남편 3명 뒷발로 죽인 얼룩말 ‘젤러’ 사망

남편 3명 '뒷발차기'로 죽인 ‘젤러’ 사망하다

지난 11월 28일(월) 서울동물원이 보유하고 있던 국내 유일의 암컷 그레비 얼룩말(1980년생) ‘젤러’가 서른두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레비 얼룩말은 CITES(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Ⅰ급 동물로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라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국제적인 희귀종이라 매우 아쉽지만, 얼룩말의 평균수명이 25세 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장수한 편이기에 서울동물원 사육사들은 호상(好喪)이라는데 위안을 삼고 있다.

생전에 ‘젤러’는 서울동물원 제3아프리카관에서 고혹적인 자태를 보이고 콧대가 높아 저 좋다는 수컷들을 줄 세운 녀석이었다. 해맑고 예쁜 눈에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반듯한 얼룩무늬와 부드러운 갈기까지 관람객들이 볼 때도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 그 자체여서 매혹적인 여성스파이로 유명한 마타하리(새벽의 눈동자)의 본명인 ‘젤러’라는 이름이 붙었다.


‘젤러’는 지난 1984년 서울대공원 개원을 한 해 앞둔 1983년 3살 남짓의 어린 나이로 수컷 세 마리와 함께 독일에서 들여와 서울동물원에 둥지를 틀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무런 탈없이 평범한 숙녀로 자라온 ‘젤러’는 건강한 새끼를 기대하며 서울동물원에서 보유 중인 수컷 세 마리 중 신랑 물색에 나섰다. 사육사들은 당시 무리 중 가장 건장한 수컷을 골라 합사시켰다. ‘젤러’의 유혹 탓인지 수컷은 매우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눈에 차지 않았던지 암컷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유혹의 자태를 뽐내면서 수컷의 구애를 거부했다.

급기야 ‘젤러’의 뒷발차기는 수컷의 배를 강타했고 수컷은 며칠동안을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사랑치곤 잔인한 결과였다. 암컷이라 해도 얼룩말의 뒷발질 위력은 상상이상이다. 제대로 한방 맞으면 뼈가 으스러질 정도이며, 사자 · 하이에나 · 표범같은 천적도 제대로 맞으면 죽음에 이른다.

1년 뒤, 1994년 10월, 이번에는 ‘젤러’보다 네다섯 살 연하의 건장한 청년을 선정해 합방을 시켰다. 무난히 합사까지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분위기는 냉랭했다.

‘젤러’의 매혹적인 유혹에 흥분한 어린 수컷은 급히 달려드는 순간 비극은 반복됐다. 이후 ‘젤러’에겐 ‘남편 잡아먹는 말’이라는 뜻의 ‘팜므파탈’이 아닌 ‘팜므파말’이라는 비아냥 어린 별명도 붙게 됐다.

3년 뒤인 1997년, ‘젤러’는 세 번째 남편을 맞게 됐다. 서울동물원에서는 국내 멸종되어가는 그레비얼룩말의 대를 잇는 것이 시급했기에 ‘젤러’의 세 번째 결혼은 불가피 했다. 사육사들은 정말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수컷 얼룩말을 합사시켰다. 하지만 세 번째 남편 역시 사랑을 전하기도 전에 뒷발차기 한 방에 비명횡사했다.

결국 까칠한 ‘젤러’는 ‘짝짓기 불가판정’을 받고 32년째 독수공방 신세로 지내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수컷마다 뒷발로 차서 죽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었다.

특이한 것은 ‘젤러’는 짝짓기 때를 제외하고 평소성격은 온순하기 이를 데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서울동물원 함계선 사육사는 “여러 수컷 중 한 마리를 선택하는 야성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면서 “발에 차여 죽은 수컷 얼룩말들을 보며 어찌보면 예쁜 암컷의 치명적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