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전이 지어지기 까지 -

2002. 9. 14.

안마산 성전터에서 설립미사후 나눔이 있었다.

장마 때문에 김치가 너무 비싸다.

누군가 오이를 많이 갔다 주었다.

두다라를 밤새도록 절이고 집에있는 사과랑 갖은 양념을 갈아 넣었다.

힘들었지만 비싼김치 걱정에 어느새 맛있는 오이김치가 되었다.

아침에 버무린 김치가 낮에는 맛이 딱 맞게 들었다.

떡하고 오이김치하고 많은분들이 맛있다며 먹어주는걸 보고

하느님의 오묘하심이 생각되고 감사했다.

함바집을 운영할때도 김치를 늘 많이 맛있게 했는데

그것은 나의 솜씨가 아닌 주님께서 마련하신 것 같다.

 

물이 없었으나 개장관리하는 아저씨가 같은 모임을 하는 사람이다.

물좀 씁시다. 해서 교육관을 지을때까지 그물을 그냥 쓸수 있었다.

개장주인은 땅을 팔려고 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오묘하심 안에서 개장주인은 몸이 많이 안좋아졌고

그집 사위들은 사업자금을 손을 벌리게 되고 결국 팔게 되었다.

 

1년여 동안 지하성당에서 지냈다.

미사에만 오는 사람은 가깝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하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어움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특히 사무장은 깜깜함속에서 문을열어야 했다.

지하라 창문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어린 사무장은 이렇게 묻곤 했다.

“회장님 지금 밖에 눈이 오나요? 해가 났나요?”

그때 장님인 어린아이가 고양이를 만지며 고양이털이 있나요?

라고 했다던 이야기가 생각이나면서 안쓰러웠다.

특히 지하성당의 빛하나 없이 하루종일 지내고 있는

신부님과 사무장의 모습속에서 빨리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 7월에 착공해서 12.13일 입주한 교육관 성당은(지금은 프란치스코회관)

처음에는 5층을 지을 계획을 했다.

유치원을 지을 계획으로 교육관의 반석을 튼튼히 했다.

교육관 성당에 입당미사를 드릴때는 서로 끌어안고 울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축하연때 사목회장은 신자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때 사회를 보던 형제는 쓰러지는줄 알았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너무 좋았다. 빛도 보이고. 너무나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우리들의 염원은 하나였다. 성당을 짓는 것.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많이 아쉽다.

그때의 감격스러움이 계속 이어지지 않음에..

 

교육관 성당 2층은 교리실이다.

마석으로 테이블을 사러 갔다. 마땅한게 없다.

어느 가게에 “오직예수”라는 액자가 걸려있었는데 성공회 신자였고

우리가 원하는 탁자를 만들어주겠노라 해서 싸이즈를 재서 주고

그 업자는 만들어 싫고 와서는 조립까지 잘 해주었다.

아주 튼튼하다.

이 테이블은 지하강당에 식탁으로도 이용되었는데

이웃본당에서 소문을 듣고 빌리러 왔다.

우리는 망가트릴까봐 노심초사했고 거절하기도 했다.

 

성당에 앉는 의자도 세심하게 준비를 했는데

옆의자와 연결고리를 해서 이어지게 했고

의자밑에는 선반을 만들어 가방을 넣을수 있도록 했다.

하나하나 우리손으로 이루어가는 재미가 힘든줄 모르게 했다.

지하성당의 어려웠으나 하나로 똘똘뭉치게 했던

그 힘이 계속해서 성당을 꾸미고 아름답게 하는데 이어졌다.

 

많은 신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봉헌도 많이 했다.

본당에 돈이 없다는 것을 모두다 알고 있었기 때문

신자들은 음식준비하는데 있어서도 자신들의 가정에 있는 것을 가지고 왔다.

고춧가루도 가져오고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놓는데 스스럼이 없다.

기쁘게 그렇게 했다. 마치 초대 그리스도인들처럼..

 

마침내 성전건축위원회에서는 성전을 짓기로 결정을 하였다.

2006. 2. 6. 기공식을 하고

여름내내 공사가 이루어졌다. 장마도 길었다. 그러나 벽돌은 올라갔고

드디어 2006. 8.15.성모승천 대축일에 상량식을 거행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대들보를 잡아당겼다.

신자들은 눈물겨워 보다가 성호를 그었다.

붓글씨는 사우동 삼성아파트에 거주하시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선생님께서 써주셨다.

 

그러나 성모승천대축일날과 함께 상량식 나눔잔치를 위해

주방에서 일하고 있던 자매님들은 와보지 못했다.

엄신부님께서는 돼지고기 130만원을 봉헌해 주셨고

사목회, 구역회 간부들이 많이 봉헌해 주셨다.

신부님의 솔선수범하시는 모습을 보고 모두들 그렇게 내어놓기를 기뻐했다.

김치도 해오고 어느 단체든지 다 돈을 만들어 드리려 했다.

콘테이너에 오이를 얻어다 놓고 오이지 꾸리아 간부들이 담가서 팔고,

많은 부식품들을 가져왔다.

 

그해 성탄 전야미사를 입당미사로 드리던날 모두 감격해 하였다.

빛이 있었다로 시작되는 밤.

새성전에서 신자들은 빛으로 오시는 아기예수님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