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스무숲 공동체  

                                                                                                    - 황현경 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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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7년여 동안의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회를 하면서 지냈던

소중한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스무숲의 모본당인 효자성당에서 열심히 주일학교 교사활동을 하다가 집이 퇴계주공으로

이사를 오면서 당연히 교적을 옮겨야 했지만 함께 활동하던 교사들과 아이들과의 헤어짐이

두려워 쉽게 스무숲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스무숲 주임신부님의 눈에 딱 걸리면서 성당이 분가한지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저의 스무숲 성당에서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저에게는 고난과 역경의 지하성당 시기 때의 기억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로지 깨끗하게 새로 지어진 교육관에서의 출발이라 그런지 아는 사람 한명 없는

 이 스무숲에서의 생활이 마냥 힘들고 두렵지만은 않았나봅니다.

오히려 새로 시작한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듯 오자마자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상황이 아주 비슷한 청년 두명과 함께 그렇게 셋이서 중고등부 교사회를 결성하고

새로운 아이들과 조금씩 친해지며 많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소소한 정을 나누며

그렇게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지요.

 

보좌신부님이 안 계신 여름신앙학교는 한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었지만

또 안계신대로 다른 재미도 쏠쏠했던 것 같습니다.

신앙학교 마지막날 밤을 오로지 아이들과 교사들끼리 그렇게도 짜릿하고 신나게 보낼줄이야~

그날 밤 아이들과 이런저런 게임이란 게임은 다해보며 날밤을 셋던 것이 화근..

결국 저질체력인 교사들의 늦잠으로 인하여 아침프로그램을 못하게 되었지요.

아이들은 그저 신나고 좋았겠지만 이사실을 신부님께서 아시면 교사들을 엄청 꾸중하시겠지요?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 입단속만 잘하면 아무도 모르겠지라며 안도했지만

결국은 프로그램 중 신앙캠프 신문 만들기에서 교사들의 늦잠이 이슈되면서

고스란히 그 신문은 교육관 입구에 떡하니 붙여지게 되었죠.

 

신부님께서 겉으로 크게 꾸중하지 않으신걸 보면 그래도 교사들과 아이들끼리였지만

신나게 그리고 무사히 캠프를 지내고 온 것이 마냥 대견스러워 보이셨는지도 모릅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요~^^

그 해 가을 주일학교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바로 보좌신부님께서 부임하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 이 얼마나 기다리던 소식이던지..

 

교사와 아이들 모두 파릇파릇한 새 신부님인 주영덕 비오 신부님을 기쁘게 맞게 되었습니다.

학생회도 처음으로 결성되고 아이들 스스로 주일학교에 대한 의욕도 넘쳐나면서

점점 아이들의 숫자도 늘어갔지요.

그렇게 스무숲의 첫 보좌신부님과도 신나는 추억을 만들며 지냈었는데

이 시간이 정말로 그리운 추억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었죠.

1년뒤 우리본당을 떠나신 신부님은 그 뒤로 2개 본당에서 활동하시고 꽃다운 33세로 선종하시며

우리곁에 영원한 사제로 남으셨지요.

이날 신부님과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가시는 길 우리 학생들과 함께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드리고 왔어요.

첫 보좌신부께서 떠나시고 두 번째로 부임하신 보좌신부님도 파릇파릇 새 신부님이 오셨어요~

새로 생긴 성당이라 새 신부님들만 오시나.. 이렇게 이야기들을 해댔지요.

두 번째 보좌신부님이 오시고 학생회 밴드부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해마다 새 성전을 짓기 위해 청년일일호프를 했었는데

그 무대에 우리 학생밴드가 처음으로 공연을 하게 되었지요.

처음엔 참 어설프더니 역시 노력한 만큼의 좋은 결실을 맺어주시는 그런 순간이었어요.

학생밴드가 그 이후로 계속 맥을 이어오진 못했지만 해마다 그 때

그 아이들만의 특색이 있는 거니까요. 또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을까요?

해마다의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다 보니 글이 점점 길어지는데요.

 

여기서 청년회 얘기로 넘어오자면 우리는 해마다 성전건립을 위한 기금마련으로

일일호프를 열었습니다. 청년회에서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기에 온힘을 다해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성과도 좋았고 일일호프만큼은 우리 청년회가 제일 잘해~라고

자화자찬을 할 만큼 해가 거듭될수록 발전해갔지요.

일일호프에서 빼놓을 수 없던 건 바로 청년회의 장기자랑 준비였는데요.

처음에는 서로 예쁘게 화음을 맞춰 성가를 부르던 것이

어느 해 부턴가 혈란한 댄스로 바뀌어 매해 청년들은 춤 삼매경에 빠지며

일일호프의 하이라이트를 춤으로 장식하게 되었죠.

춤 선생님을 영입해서 전문적으로 배워보기도 하고 연습실을 빌려서 연습하기도 하고

춤에는 영 소질이 없던 청년들도 계속 함께하다보니 흥미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즐기게 되고

모두 춤에 대해선 열정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일일호프를 준비하며 이렇게 즐거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스무숲 여자청년들이 기가 세다는 사실은 여러 성당 청년들이 인정할 정도였는데요

이렇게 기가 센 여자들이 뭉쳐지기까지는 남자청년들의 지고지순한 희생도 필요했고

여자청년들끼리의 다툼도 필요했습니다. 서로의 각기 다른 생각들을 펼치다보면

그것이 다툼이 되기 마련이지만 그것들을 잘 풀고 이해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서로의 생각을 받아들일 줄 알고 이로 인해 서로 더 잘 알게 되면서

끈끈한 정이 생기는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 청년회는 정으로 얼마나 똘똘 뭉쳐있었는지 어디 새로운 청년이 들어올려고 치면

조금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울타리를 치고 살았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공동체나 완벽한 공동체는 없기에 일단은 잘 살아보려고 애쓰고

그러다가도 어쩌다 삐걱거릴 수도 있고 그러다 다시 으쌰으쌰하며 일어날 수도 있고

다 그런 생활의 반복인 것 같습니다. 그런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거 아닐까요?

 

전 지금까지 짧지 않았던 스무숲에서의 신앙생활을 함께 추억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거들짝을 만난 것만으로도 스무숲 공동체에 참으로 큰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감사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젊은 청년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이 그 감사함에 대한 보답이며 우리 가정의 참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스무숲 공동체 안에서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