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단상(斷想)

                                                                     - 김영화 야고보 -

 

우리 스무숲 성당이 설립된 지 10년이 되었다.

10주년 행사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벌써?”라는 느낌과 함께

10년을 대수롭지 않은 시간으로 생각하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아닌가?

그동안 너무 숨가쁘게 살아온 것도 같고 길어진 평균수명 탓에 시간에 대해

건방져짐도 사실일 것 같다.

사실 지금의 10년은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가속화한 세상의 변화 속에서

과거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강산의 변화를 몇 차례나 포함하는

큰 변화의 10년이 아닌가?

 

우리 스무숲 성당의 역사는 더 큰 변화의 10년일 것 같다.

안마산 자락 후미진 곳. 호젓한 산책로 옆, 일시 쓰레기 매립까지 이루어졌으며

개 울음소리로 시끄러웠던 곳에 어느덧 육면체의 교육관과 돔형 본당,

성모동산이 예쁘게 자리를 잡고, 사제관, 수녀원이 들어

십자가의 길 동산까지 마련 중이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라고 할 만하다.

 

이제 신자 수 기준 춘천 최대의 본당이 되었다는 사실은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진행된 본당 설립미사나 상가 지하 성당의

옛 기억들과 대조를 이루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큰 변화이며 큰 축복이다.

정말이지 우리 성당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예쁜 성당에다 오시는 신부님마다

모두 그리 좋으시니 어찌 축복받은 성당이라 아니 할 수 있을까?

본당의 기초 마련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셨던 초대 신부님에,

더없이 맑은 심성으로 우리 마음을 정화해 주신 두 번째 신부님,

그리고 새로운 10주년의 시작에 잘 어울리실 세 번째 주임신부님,

이제 좋으신 수녀님까지 오셨으니 여기에 더 바랄게 무엇이 있을까싶을 정도이다.

 

단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면 ‘좋은 신자’일 것이다.

그렇다. 좋은 신자는 좋은 교회 공동체 형성을 위한 가장 핵심적 요소이다.

다행히 우리 주변에는 성당 일을 집안일 못지않게 아니

더 큰 비중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많은 교역자, 천사신자,

그리고 숨어있는 훌륭한 신자들이 많아 주변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포함하여 평소 소극적 참여에 자주 머무르는

많은 가톨릭신자들에겐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이다.

특히 설립 초기의 열정과 대비되는 요즈음,

왠지 미안해짐은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닌 것 같다.

이는 우리 성당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한 신호일 수 있어 위안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앞에 한층 안정된 교회로서의 10년, 100년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안정이란 좋은 것이지만 동시에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해이와 나태는

경계해야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을 가능으로 바꾼 설립 당시의 많은 분들의

열성이 남아 있고 필요할 때는 꼭 주시는 하느님이 가까이 계시는데

우리가 지레 무엇을 걱정하랴 만은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도우시는

분이시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지난 10년을 잘 정리하고 새로운 10년을 잘 시작하겠다는

의욕과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나는 개인이나 공동체이건 언제나 적정의 위기의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우리의 새로운 10년도 끊임없는 개혁과 변화에 의한

도전의 10년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변화와 도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사명 중의 하나이다.

달란트를 받고 땅에 묻어둔 자가 내침을 받는다는 성경 말씀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가만히 있는 것도 퇴보이며 스스로 전기를 마련하는 자가 승리자가 되는 것은

세상의 진리와도 일치한다.

 

우리 공동체도 적당한 위기의식으로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하며

모름지기 교육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찍부터 교회는 신앙 교육은 물론이고 사회 모든 분야 교육의 메카 역할을 수행해 왔다.

국가 또는 사회주도의 교육 기능이 강화된 오늘날에 와서도 교회가 가진

사회적 교육 기능 은 결코 작지 않다.

교회는 특히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고칠 수 있는 곳이란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교육기관이다.

 

평소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사회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키는 곳이다.

우리의 10년 역사 속에서도 면목을 일신한 좋은 변화의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열심히 봉사하면서 자신의 성장까지 일군 모습들이 떠오른다.

매우 특이한 것은 성당이 매우 효과적인 교육장이면서도 그 참여에 경쟁이 없으며,

언제나 그 기회가 열려 있는 곳이란 점이다.

본인의 뜻과 의지만 있으면 언제나 참여의 기회가 주어지며 기다리고

격려해주는 많은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이 바로 성당이다.

 

참여가 너무 손쉬운 것이 소극적 참여에,

열외자까지 양산하는 악순환의 원인이 될 정도이다.

누구나 무서워하는 게 열외자 취급을 받는 일이지만

교회 일에 있어서만은 쉽게 생각하는 것도 포용이 전제되어 있는 곳에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참여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만은 절대 무작정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기록된 버나드쇼의 묘비 글이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우물쭈물하지 말고 나 자신이,

내 가족이 참여의 마당에 들어 설 수 있도록 서두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이게 바로 자신을 위한 길이며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우리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새로운 10년이 우리 모두가 교회를 잘 이용하는 기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바람은 특히 미래를 위한 꿈나무들인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하고 싶다.

세상의 부모들은 모두 자식들이 공부 잘하기를 원한다.

공부에 관한한 무조건적이다.

많은 경우, 공부라면 다른 모든 걸 희생할 각오까지 되어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하는 부모 밑에서 공부 잘하는 자녀는

이론상으로나 확률적으로나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내가 아는 한 정말 공부 잘한 학생들 중에서 공부만 한 학생은 없었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우선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만 시키는 것 보다는 다른 일을 하면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춘천 지역에서도 자녀가 되려 부모님께 신앙적 자극까지 드릴 정도로 ]

교회도 열심히 다니면서 아주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인 좋은 본보기가

여럿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아이들이 성공이 어느 한 측면으로의 조명만으로 설명될 단순한 일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개인적 성공 비결로도 연결됨은 곱씹을만한 진리일 것이다.

미국의 일류대학들이 입시에 봉사활동 내용을 크게 반영하는 것이 같은 연유인데,

우리들은 그 취지를 이해하기 보다는 봉사점수에만 관심이 많은

유감스러운 현실 속에 살고 있다.

 

나는 봉사가 기왕이면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본래, 교회 공동체는 봉사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는 봉사 자체만이 강조되지 말고 봉사와 교육이 효과적으로

연계된 봉사 프로그램에 의한 유인책이 있어야 하며,

교회는 우리 아이들이 봉사하면서 크게 배울 수 있는 제도의 마련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비록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한 차이이지만 교회 안에서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고

그 후배가 다시 후배를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의 도입도 고려했으면 싶다.

이는 개신교회에서는 이미 정착된 방법으로 우리 가톨릭이 배워야할 부분일 것 같다.

 

사실 이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크며 아이들의 경쟁적 참여가 이어지는 즐거움도

뒤따를 것이다. 가르치면서 스스로 배워가는, 그래서 교육이 무엇인지,

배움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터득하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우리 성당의 미래는 물론

우리나라 전체의 미래가 밝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더 밝아질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10주년을 맞이한 우리 스무숲 공동체 모두의

파이팅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