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모회 이야기

- 이두지 데레사 -

 

10년. 어린 초등학생이 어른이 되는 짧지않은 시간이지만

난 아직도 성모회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다.

왜 서두부터 ‘아직도’라는 단어를 쓰는지

교우여러분들이 잘 아고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거부할수 없는 하느님의 뜻으로 첫 번째 임기를 마치고 다시 맡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처음 스무숲성당이 설립되고나서 분가전 모본당이었던 효자동성당에서

마리아회 총무를 했던 경험만으로 성모회장에 덜컥 선임되었다.

막막하고 부담스러운 자리임에 분명했다.

아직 성전도 없는 신설본당인데다가 그당시 15년정도의 신앙생활동안

단체장은 한번도 맡은적이 없어서 비신자인 남편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도

나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소소한 걱정을 하고 있을수가 없었다.

모본당이었던 효자동본당 임알로이시오 신부님을 찾아 뵙고

당장 성모회를 이끌 예산이 전혀 없던터라 부탁드렸더니

선뜻 50만원을 내어주셨다.

그돈을 종자돈삼아 여러 가지 일을 시작했다.

지금 다시하라고하면 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무조건 기금마련해서 지하성당을 떠나 성당터에서

교육관이라도 지어 나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지하성당에서 추억이 많지만 크게 기억나는 두가지가 있다.

우선 지하성당을 쇼핑센터 지하절반을 세들어 성당과 사무실,

회합실등을 꾸민상태라서 성모회원들과 같이 일할 주방은 없었다.

우선 급한대로 우리집에 모여서 각종밑반찬을 만들어서 포장하고

성당교우들과 비신자들에게도 팔아서 기금마련을 했고

우리회원들이 직접만든 것 말고도 고등어,김,잼등을 받아서 팔기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다들 10년전이라 육체적으로는 지금보다 덜 힘들었는지 모르지만,

모두가 합심해서 하는 일들이 힘들어도 힘들지 않고 즐겁게 일했던 것 같다.

 

항상 그 시절에는 성모회일을 하기 바빠 비신자인 남편의 눈치를 약간은 보기도 했었다.

남편은 내 신앙생활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주고 한번도 싫은내색 한적 없지만

그냥 내자신이 괜스레 남편과 아이들의 눈치를 조금은 살폈던 것 같다.

본격적인 성전건립이 시작되면서 공사현장식당 즉 함바를 시작했다.

우선 기본적인 그릇들과 약간의 예산이 필요했는데 성전건립이 시작되면서

성당예산도 없었고 성모회도 성전건립예산으로 다 소진해서 막막했는데

항상 하느님은 천사를 보내주시는지 세레나자매님께서 선뜻 50만원을 내어 주셔서

그돈을 가지고 식당에 필요한 기본적인 준비를 시작하였다.

 

회원들이 조를 짜서 식당운영을 했는데 여러신자들이 도움을 주었다.

반찬을 하라며 직접 재료를 가지고오는 교우들도 있었고 모두들 협조적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데 성모회 총무일을 했던 사례지아자매님은 회장인 나보다

더 열성적으로 몸 아끼지 않고 식당일에 헌신적이어서 지금도

그분의 노고는 잊을수가 없다.

주임신부님을 필두로 교우들의 여러 협조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성전건립이 완공되었고 나도 그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아이도 좋은 직장에 입사하게 되었고,

성모회장 5년임기도 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남편에게 약간은 소홀했기에 회장임기 끝나면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는데, 임기를 한달도 채남기지 못하고

남편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갑자기 우리곁을 떠나고 말았다.

내 약속이 무색하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다시5년이 흐르고 주님은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다시금 이 자리에서 봉사하게 하신다.

무슨 깊은뜻이 있는지 미약한 나는 잘 모르지만,

잘 모르기에 주님뜻에 순명하며 살려고 한다.

짧지않은 10년이었지만, 나에게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 힘만으로 되는건 아무것도 없었으며

우리 교우들의 도움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많으시간 견디고 지낸 것 같다.

모든분들게 항상 감사를 드린다.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