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避靜, Retreat)이란 단어는 사실상 가톨릭 신자들만 쓰는 그들만의 전문용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 중에도 말만 들어 봤지 여러 이유로 피정 경험이 없는 이들이 제법 있을 것입니다.

비가톨릭 신자들께는 "천주교 버전 템플스테이”라고 하면 좀 쉽게 이해하실 듯합니다.

피정은 영어로 표현되듯 물러남(retreat)이란 의미와 연결된 말입니다.

피세정념(避世靜念) 또는 피속추정(避俗追靜)을 줄여 부르는 말이니 그 뜻이 좋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서 자신을 둘러보고 고요함을 찾는 일이므로 피정자는 활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즉,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일상에서 떨어져 나와 여유를 되찾고 잃어버렸던 영혼의 균형감을 회복하는 시간이자 작업입니다.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성인(1696-1787)은 피정에 필요한 세 가지 실천적 태도를 “온전한 마음으로 들어오라,(Intrate toti) 홀로 머물러라,(Manete Soli) 다른 사람 되어 나가라.(Exite Alii)”라고 간단 명료하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홀로 머물기 위해서 피정은 보통 침묵을 요청합니다.

피정에 참여하는 이들이 온전히 하느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환경을 형성해 보는 것입니다.

피정 일정 기간 동안에는, 불규칙했던 식사시간은 안녕! 끼니를 때마다 챙겨 먹을 수 있고, 밤늦게까지 일하던 습관을 멈추고 일찍 잠들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잘 지키지 못하던 것들을 바로 잡아 봄으로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피정은 다양한 곳에서 할 수 있습니다만, 주로 수도원이나 피정을 위한 시설(피정집) 등이 적합한 장소로 꼽힙니다.

피정과 같이 고요 안에서 기도하고자 했던 영적 수행은 그리스도교 이전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교에서 피정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사십 일간 단식하며 기도하셨던 사건과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 전통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가톨릭대사전, “피정” 항 참조)

대중들에게 피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인물이 있는데, 바로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성수련"(Spiritual Exercises) 또는 "영신수련"이란 그의 피정 지침서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식별하여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영성수련"은 1548년 교황 바오로 3세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황 비오 11세 교황(1922-39 재위)은 그를 피정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수도원 외에 피정자들이 일정기간 머물면서 영적 안내를 받을 수 있는 ‘피정의 집’은 17세기에 생겨났다고 합니다.(같은 책, “피정” 항 참조)

이냐시오의 "영성수련" 방식의 피정은 다양하게 응용된 방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대표적인 침묵 피정입니다.

피정 중에는 주위 사람들과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습니다.

당연히 스마트폰도 피정 안내자가 맡아 줍니다.

오로지 기도하고, 기도의 내용과 기도 중의 체험에 관해 영적 안내자와 이야기를 나눌 뿐입니다.

그래서 피정 기간 동안 피정 참가자들은 서로 시선도 마주치지 않습니다.

식사 중에도 침묵입니다.

요즘에는 매우 편해졌지만, 처음으로 영성수련 피정을 경험하였을 때, 너무 답답한 나머지 피정집 강아지와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침묵피정 중에는 나처럼 하느님을 직접 체험해 보고자 온 다른 피정자들을 돕는 의미에서라도 시선을 피해 주고, 그들의 고요를 가능하면 깨지 않기 위해 몸가짐을 조심하게 됩니다.

조심하기 위해 특별히 애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몸을 의식적으로 천천히 움직여 보는 신체적 훈련이 도움이 됩니다.

몸의 움직임이 내적 고요를 찾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몸이 쉴 수 있다면, 마음도 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