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오랫동안 냉담하다 최근에 다시 성당에 나오게 됐는데, 저를 다시 나오게 한 분이 “회개하고 죄를 끊고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수도자처럼 사는 분이라 심리적 부담감이 커집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선 냉담 교우로 살 때가 더 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성당에 가기가 무섭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일까요?

답 : 그렇지 않습니다. 형제님의 문제는 신앙적 과제들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여서 그런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선 회개에 대한 버거운 마음을 가볍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회개라고 하면 길거리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삶이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앙에 매진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어떤 종교는 신자들에게 그런 삶을 요구해 가정 파탄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그렇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심리적 문제가 심각한 이들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회개란 ‘마음의 눈이 뜨여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감사하지 않고 짜증 내고 분노하고 우울해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역경을 겪으며 자신의 살아있음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그분의 은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때 자신이 교만했음을 고백하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삶, 일상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회개한 마음입니다.

또 자신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분노하다가 그 분노의 끝자락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볼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많은 죄를 지은 자신을 용서해주셨구나 하는 자각이 들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느님께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처럼 자신의 이기적인 감정과 욕구에 사로잡혀 심술 난 아이처럼 짜증 내고 우울해 하면서 살다가 심리적으로 눈이 뜨여 하느님 현존을 느끼고 감사하고 용서를 청하는 삶을 회개하는 삶이라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들은 마음이 즐겁고, 기도하고 싶어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그 맛을 느낍니다. 어린아이처럼 하느님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체험했기에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지요. 이처럼 회개에서는 하느님의 큰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러한 감사와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고 억지 회개를 하고자 하면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생기고 병적인 죄책감과 자기 기만적이며, 때로는 자학적인 기도 생활을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할 일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신의 모습을 다듬으려 합니다. 그처럼 우리도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체험하면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죄를 끊으려 노력합니다. 이렇게 물이 흐르듯 마음이 변화를 일으켜야 회개가 주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회개에 집착한다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커녕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길거리 회개 이벤트를 벌이는 광대 짓을 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영성 심리 관점에서 회개는 자기의 삶을 다듬어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떼이야르드 샤르댕 신부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그리스도라는 정점을 향해 진화해가는 존재’입니다.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회개하는 삶이며,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고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 하느님 나라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회개하는 삶을 산다면서 마음이 어둡거나 무겁고 우울하다면, 그것은 잘못된 회개이고 피상적인 회개, 작위적인 회개로 일어나는 병적인 현상입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