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 NCR > 12월 27일자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원제 : 안토니오 스파다로 예수회 신부와의 질의응답) - 편집자주


 예수회의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는 어떤 직위나 권한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바티칸의 영향력 있는 성직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출신인 스파다로 신부는 수차례 교황과 인터뷰를 가졌고 교황의 신임을 받는 조언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스파다로 신부는 출판 전 바티칸의 검수를 받는 권위 있는 예수회 잡지 < 라 치빌타 가톨리카(La Civiltà Cattolica) >의 편집국장이다. 스파다로 신부가 교황에 대한 수많은 비판, 그 중에서도 보수 측의 비판을 맞는 피뢰침이 된 이유는 그가 교황과 교황의 개혁 의지와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스파다로 신부는 지난 11월, < La Civiltà Cattolica >의 본사가 자리하고 있는 빌라 말타(Villa Malta)의 사무실에서 < RNS : Religion News Service >와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폭넓은 주제를 가지고 나눈 대화 가운데 스파다로 신부는 2017년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회의 다음 행보, 80세를 맞은 교황이 앞으로 어떻게 수많은 일들을 해나갈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스파다로 신부가 ‘착한 교황’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묘사하는 것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Q :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많은 개혁에 착수한 바 있고 여러 분야의 쟁점들, 특히 논란 중인 쟁점들에 대해서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2017년 교황과 교회의 다음 행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결정 방식은 여기서는 이런 중요한 일들을 저기서는 저런 사소한 일들을 정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세우고 제안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교황의 결정 방식은 진정한 식별이라 할 수 있다. 교황은 길을 따라 걸으면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곤 한다. 그렇다 보니 우리 뿐 아니라 그 분 자신조차도 예측할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첫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또 그 다음에도 교황은 나에게 결정을 내리는 일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일이라고 말했었다. 교황께서 무슨 일을 하실지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Q : 교황은 올 12월에 80세를 맞게 된다고 하는데…

 이는 어떤 압박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교황께서는 교회가 하느님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전혀 서두르려 하지 않는다. 교황께 달린 일이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황께서는 여러 개혁 과정에 착수함으로써 사람들을 이끌고 계신 것이다. 교황께서는 적어도 그가 시작한 몇 가지 과정들의 종결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그 분께서는 어떤 압박이나 초조함을 느끼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다가온 기회를 잘 활용하고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고자 할 뿐이다. 이는 초조함보다는 책임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분이 차분하고 고요하게 보인다. 내 눈에는 아주 놀랍게, 마치 기적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Q : 최근 인터뷰에서 교황은 매일 밤 6시간씩 ‘꿈쩍도 하지 않고 잔다’ 고 말했었다. 또한 많은 기도를 바치기도 하며 그의 원동력은 ‘하느님??은총’ 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런 교황의 비결은 무엇인가?

 

 맞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교황님께서는 절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언제나 일하고 있지만 스트레스는 전혀 받지 않는다. 그 점이 바로 ‘기적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황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는 기도하는 분이다.

 

Q : 그럼 이러한 원동력이 기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인가 ?

 

 원동력은 ‘성전’이 그 바탕에 있는 것 같다. 교황께서는 따로 집무실이 없고, 그저 성녀 마르타의 집에 방 한 칸이 있을 뿐이다. 그 분의 집무실은 바로 성전이다.


Q : 2018년 10월, ‘청년’을 주제로 개최될 다음 바티칸 시노드가 주요 쟁점인 것처럼 보이는데, 어떤가?


 내가 생각하기에 최근 몇 달 동안 떠오르고 있는 의제 혹은 주제는 ‘식별’이다. 이는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 Amoris Laetitia」의 핵심으로, 식별 중에서도 특히 신부와 신학생과 관련된 식별이라 할 수 있겠다.

 교황께서는 「사랑의 기쁨」의 핵심적 과제는 교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진정으로, 어떤 교리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교회가 단순히 모든 이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어떤 규칙들을 적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식별을 지금보다 잘 수행할 수 있는, 그리고 지금보다 더욱 심도 있게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교회는 사람들의 삶에, 그들의 영적 여정 그리고 하느님께서 각자 안에서 활동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게 일반적 규칙을 적용한다고 목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식별 속에서 성장해야 한다. 아마 이것이 다음 시노드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Q : 그런데, 이러한 식별을 비판하는, 이를테면 반대 서한을 공개한 4명의 추기경 같은 이들은 ‘네 혹은 아니오’ 와 같은 답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이 정말 그러한 식별에 대해 비판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교황께서 삶이란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회색과도 같다고 말씀하신 것을 알 뿐이다. 이처럼 여기에는 많은 미세한 차이가 있으며, 우리는 그 차이를 식별해야 한다.

 

 이는 부활의 의미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육화하시어 눈앞에 나타나신 것은 우리가 진정한 인간성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인데 이러한 인간성은 절대로 고정되어 있거나 매우 명확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목자는 인간 삶의 진정한 역동성에 빠져들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자비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식별’과 ‘자비’는 이번 교황 임기의 두 가지 핵심인 것이다.


Q :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식에 대한 반대가 점점 커지고 강해진다는 느낌이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는 일부 반대자들이, 특히 소셜 네트워크에서 너무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 메시지를 메아리처럼 퍼트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음은 오로지 제의실 안에 있는 사람만 들을 수 있다. 제의실을 벗어나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이런 큰 소음을 듣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언급한 4명의 추기경 혹은 다른 이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미 여러 번 말했듯이, 그 분께서는 (찬성과 대립하는 구도의) 반대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그것은 그 분에게 전혀 문제가 아니다. 교황께서는 자신의 삶 속에서 언제나 반대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해서 반대에 익숙해졌고 그에 따라 삶이란 긴장감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로 긴장감이 없다면 삶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혁 과정의 효과를 보여주는 좋은 표징이 바로 이러한 반대의 출현인 것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두 종류의 반대를 구분하고 계신다. 하나의 반대는 교회를 돌보는 이들이 가하는 비판으로 이들은 교회를 사랑한다. 이런 사람들은 선의를 가지고서 교회의 번영을 바란다. 나머지 반대는 그저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는 이념적 반대라 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번째 유형의 반대 이야기를 들으시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반대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Q : 그럼 ‘올바른 반대’가 커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식에 있어 이(러한 올바른 반대의 증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올바른 반대는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교황에게 직접 말을 걸고 솔직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연기와 같은 가식적 표현이라는 소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교황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2013년에 교황님과의 첫 번째 인터뷰를 시작할 때, 그 분께서는 자신이 말하는 것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거든 자신에게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러한 사실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매우 사소한 일이었지만 이는 나에게 교황이 얼마나 비판에 마음을 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사랑의 기쁨’처럼 긴 과정의 산물과도 같은 행보나 문서들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교황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의 시노드가 그렇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시노드는 매우 개방적인 그리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교황은 이러한 점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노드를 거쳐) 마침내 그 분은 교황 권고를 작성한 것이고, 이는 단순히 그 분이 ‘착한 교황’이기 때문이 아니라 교황으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Q : 그게 무슨 의미인가? 많은 사람들이 교황은 아주 착하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교황은 착하다’와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지겹다. 물론 교황께서는 착하다. 하지만 교황께서는 교황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 그 분은 자기 직무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의미다. 이 권력은 바로 섬김의 권력(power of service)이다.


 ‘프란치스코’는 교황이고, 그는 자신이 교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자신의 직분을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필요할 때 교황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황께서는 많이 듣고, 마음을 열고 있다. 그 분께서는 무언가를 하기 전에 꼭 많은 기도를 한다. 하지만 한 번 결정을 내릴 때는, 이 결정은 매우 긴 과정을 거쳐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듣는 것, 기도하는 것, 식별하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Q : 그러니까 교황이 자기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


 그 분은 매우 냉정하다. 결정을 내리지만, 그 결정들은 어떤 과정의 결과물이다. 그 분은 착하지 않고 냉정하다. 교황은 또한 자비롭다. 침착하고 고요하다. 나는 그저 ‘착한’ 교황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 분께서는 착한 모습만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동 방식, 말하는 방식은 모두 복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복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단지 착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Q :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통을 존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요한 바오로 2세와 달리, 추기경을 120명 넘게 선출하지 않았다.


 교황은 물론, 매우 진보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황은 보수주의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보주의자도 아니다. 그 분은 무언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베르고글리언 : bergoglians’, 즉 자신과 닮은 이들이 주변에 모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혀 다른 이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Q : 교황의 건강은 괜찮은가 ?


 아주 좋다. 저녁에는 피로를 느끼지만, 자고 일어나면 금방 기력을 되찾는다. 때때로 순방 중에는 오전 끝 무렵에도 피곤한 모습을 볼 때가 있지만 두 세 시간 정도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운찬 모습으로 나타난다.


 교황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고 있다. 몇 년 전쯤 나는 교황께 “건강을 챙기시라. 기력을 아끼라”고 말했었다. 교황은 “걱정 마시오. 나도 피곤하면 일을 멈춘다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때때로 알현을 취소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피곤함을 느낄 때 사과 하나를 먹고 낮잠을 자기도 하는 것이다. 그 분은 자기 건강을 챙기는 법을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