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우리들의 이야기를 올리는 곳입니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8 물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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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6 2013-03-28
- 물난리 - 2003. 1. 13. 오후 11시쯤 엄기영주임신부님은 우연히 성당에 들렀는데 지하성당에 물이 가득 차 있는걸 발견하고 주요 간부들에게 지하 성당안에 물이 차있으니 구역에 빨리 연락을 하고 성당으로 오라고 전화를 하였다. 성당에는 몇 군데 전등불은 꺼지고 사무실과 복도에는 약 30cm정도의 물이 차 있다. 먼저 소방서에 지원 요청을 하니 이런일로는 출동하기 어렵다는 대답이다. 정족리 묘역에서 사용하는 양수기를 밤중에 가져와 새벽2시가 넘도록 물을 퍼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모두들 쉬는 시간이었다. 한 형제는 급한마음에 신던 구두를 신고가 물을 3시간이상 퍼내 구두가 밑창이 떨어지고 다시는 신을수 없게 망가져 버리는 일도 있었다. 일은 상가에 스프링클러가 부식되어 터지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엄동설한. 추운 겨울이었지만 추운줄도 모르고 주변의 신자들은 한마음이 되어 물을 퍼냈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마른 걸래로 닦고 드라이기로 복사기와 집기들을 말리면서 하루가 저물어 갔다. 저녁미사때에는 대청소를 한것처럼 뽀송뽀송 깨끗하여 현장을 보지 못한 신자들은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었다. 우연히 알게된 것. 밤새도록 작업을 한 우리들만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섭리였을까.. 그때는 힘들었지만 힘든줄 모르고 도울일이 없을까 함께하며 원인을 알고 대처를 하면서 하나가 되고 함께 기뻐했다. 물난리였지만 성전을 만들던 우리들이었기에 일심동체가 되어 난리가 아닌 사랑으로 다가왔고 아픔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다. 1,2구역 신자 50~60명 추위에 발 벗고 물퍼내는 이 사건은 서먹하였던 본당 교우간에 친밀감을 쌓아가는 계기가 되었고 성전건립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17 성전이야기- 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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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 2013-03-28
- 성전이 지어지기 까지 - 2002. 9. 14. 안마산 성전터에서 설립미사후 나눔이 있었다. 장마 때문에 김치가 너무 비싸다. 누군가 오이를 많이 갔다 주었다. 두다라를 밤새도록 절이고 집에있는 사과랑 갖은 양념을 갈아 넣었다. 힘들었지만 비싼김치 걱정에 어느새 맛있는 오이김치가 되었다. 아침에 버무린 김치가 낮에는 맛이 딱 맞게 들었다. 떡하고 오이김치하고 많은분들이 맛있다며 먹어주는걸 보고 하느님의 오묘하심이 생각되고 감사했다. 함바집을 운영할때도 김치를 늘 많이 맛있게 했는데 그것은 나의 솜씨가 아닌 주님께서 마련하신 것 같다. 물이 없었으나 개장관리하는 아저씨가 같은 모임을 하는 사람이다. 물좀 씁시다. 해서 교육관을 지을때까지 그물을 그냥 쓸수 있었다. 개장주인은 땅을 팔려고 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오묘하심 안에서 개장주인은 몸이 많이 안좋아졌고 그집 사위들은 사업자금을 손을 벌리게 되고 결국 팔게 되었다. 1년여 동안 지하성당에서 지냈다. 미사에만 오는 사람은 가깝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하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어움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특히 사무장은 깜깜함속에서 문을열어야 했다. 지하라 창문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어린 사무장은 이렇게 묻곤 했다. “회장님 지금 밖에 눈이 오나요? 해가 났나요?” 그때 장님인 어린아이가 고양이를 만지며 고양이털이 있나요? 라고 했다던 이야기가 생각이나면서 안쓰러웠다. 특히 지하성당의 빛하나 없이 하루종일 지내고 있는 신부님과 사무장의 모습속에서 빨리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 7월에 착공해서 12.13일 입주한 교육관 성당은(지금은 프란치스코회관) 처음에는 5층을 지을 계획을 했다. 유치원을 지을 계획으로 교육관의 반석을 튼튼히 했다. 교육관 성당에 입당미사를 드릴때는 서로 끌어안고 울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축하연때 사목회장은 신자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때 사회를 보던 형제는 쓰러지는줄 알았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너무 좋았다. 빛도 보이고. 너무나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우리들의 염원은 하나였다. 성당을 짓는 것.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많이 아쉽다. 그때의 감격스러움이 계속 이어지지 않음에.. 교육관 성당 2층은 교리실이다. 마석으로 테이블을 사러 갔다. 마땅한게 없다. 어느 가게에 “오직예수”라는 액자가 걸려있었는데 성공회 신자였고 우리가 원하는 탁자를 만들어주겠노라 해서 싸이즈를 재서 주고 그 업자는 만들어 싫고 와서는 조립까지 잘 해주었다. 아주 튼튼하다. 이 테이블은 지하강당에 식탁으로도 이용되었는데 이웃본당에서 소문을 듣고 빌리러 왔다. 우리는 망가트릴까봐 노심초사했고 거절하기도 했다. 성당에 앉는 의자도 세심하게 준비를 했는데 옆의자와 연결고리를 해서 이어지게 했고 의자밑에는 선반을 만들어 가방을 넣을수 있도록 했다. 하나하나 우리손으로 이루어가는 재미가 힘든줄 모르게 했다. 지하성당의 어려웠으나 하나로 똘똘뭉치게 했던 그 힘이 계속해서 성당을 꾸미고 아름답게 하는데 이어졌다. 많은 신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봉헌도 많이 했다. 본당에 돈이 없다는 것을 모두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자들은 음식준비하는데 있어서도 자신들의 가정에 있는 것을 가지고 왔다. 고춧가루도 가져오고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놓는데 스스럼이 없다. 기쁘게 그렇게 했다. 마치 초대 그리스도인들처럼.. 마침내 성전건축위원회에서는 성전을 짓기로 결정을 하였다. 2006. 2. 6. 기공식을 하고 여름내내 공사가 이루어졌다. 장마도 길었다. 그러나 벽돌은 올라갔고 드디어 2006. 8.15.성모승천 대축일에 상량식을 거행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대들보를 잡아당겼다. 신자들은 눈물겨워 보다가 성호를 그었다. 붓글씨는 사우동 삼성아파트에 거주하시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선생님께서 써주셨다. 그러나 성모승천대축일날과 함께 상량식 나눔잔치를 위해 주방에서 일하고 있던 자매님들은 와보지 못했다. 엄신부님께서는 돼지고기 130만원을 봉헌해 주셨고 사목회, 구역회 간부들이 많이 봉헌해 주셨다. 신부님의 솔선수범하시는 모습을 보고 모두들 그렇게 내어놓기를 기뻐했다. 김치도 해오고 어느 단체든지 다 돈을 만들어 드리려 했다. 콘테이너에 오이를 얻어다 놓고 오이지 꾸리아 간부들이 담가서 팔고, 많은 부식품들을 가져왔다. 그해 성탄 전야미사를 입당미사로 드리던날 모두 감격해 하였다. 빛이 있었다로 시작되는 밤. 새성전에서 신자들은 빛으로 오시는 아기예수님을 맞이했다.  
16 제주도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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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3 2013-03-18
- 제주도 성지순례- 2011. 11. 7. ~ 9. : 구반장 65명 참가 민신부님께서 계획하셨던 구반장들의 제주도 성지순례는 새로오신 고봉연요셉신부님과 함께 순례길에 올랐다. 한마디로 너무 좋았다. 신부님께서는 가는곳마다 가이드 역할을 하시고 매일미사를 성지에서 봉헌하고 성경말씀을 읽어주신다. 강론은 함께간 신자들이 돌아가며 선교사례를 담은 체험발표를 했는데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이시돌, 새미은초, 용수성지, 화사평, 애덕의집... 참 의미있는 좋은시간이다. 제주도에 여러번 왔지만 이렇게 좋지는 않았다. 코스도 잘 잡았다. 구역회 간부들은 매번 빠진 사람이 없는지 숫자를 세고 간식을 챙긴다. 간식을 사러갈때는 차가없어 걸어가고 올때는 간식을 한아름씩 안고 택시를 타고 와서 숫자대로 나눈다. 매일밤 그렇게 간식을 준비하고 메뉴를 정했는데 힘듬이 남는다. 마직막날에는 비가 와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 연세가 있으신분. 자매님들이 감기에 걸릴까 염려되고 걱정이 많이 된다. 순례중에 2구역장의 생일이 있다. 축하해주려 케익을 사러 나갔는데 가도가도 빵집이 없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 이렇게 힘든거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차를 타고 다니는 일이 많다보니 소화불량인 분들이 많다. 소화제를 그렇게 많이 사본적도 없다. 쉬는곳에서 약국만 보이면 소화제를 산다. 반장일은 잔일이 많고 수고도 많다. 이번 성지순례는 우리들에게 활력소를 많이도 심어 주었다. 모두들 열심히 할 것을 결심했고 정말 다음번 회합때에는 많이 나오셨다  
15 초대 재무평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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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 2013-03-15
재무평의회 이야기 -초대 재무주간 외 위원- 우리 재무위원들은 가족같이 지내서 힘든줄 모르고 재미있게 보냈던것 같다. 바자회때는 포도를 가평에서 가져다 팔았는데 포도하나 먹는일 없이 철저히 했고 선물을 해야 할때도 사서 드렸다. 강원대학교 학생들이 신자도 아닌데 많이 도와주었다. 계속해서 배달을 해야했고 밤중에 배달을 할 때도 있었는데 그 학생들을 과일하나 주지 못하고 그냥 보냈다. 나중에 생각하니 사서라도 들려보냈어야 했는데 마음이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들을 다 도와주셨다. 교수로 발령이 나거나 큰회사의 연구원이 되었고, 이름있는 회사에 취직도 했다. 감사하다. 성당에 또 신자들에게 싱싱한 포도를 판매하여 성전건립에 도움이 되고자했던 순수함이 개인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괴소문에 무척 마음이 아프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결코 아니다. 바자회를 하는동안 조카 결혼식이 있었다. 꼭 가보아야 할자리여서 가서 부리나케 인사만 하고 식도 못보고 돌아왔다. 자리를 비웠다고 신부님께서 서운해 하시기도 했다. 저녁이면 늦게까지 결산을 냈다. 어디가 얼마를 팔았고 일목요연하게 사무장님이 다시 보지 않아도 되도록 마무리를 잘하여 믿고 맡기셨는데 그또한 힘든줄 모르게 했다. 성전건립의 모든 기금을 관리했다. 개인별, 반별, 구역별, 또 전체적으로 원장을 관리했고, 출납부를 만들었다. 성전건립모금으로 휴지,공병을 모을 때 보면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게기가 됨을 알수 있다. 사무실에서 나오는 신문을 모아서 묶어 차에 실어 나르곤 했는데 허리가 삐끗하여 보름동안 치료를 해야 한 적도 있다. 함바운영때에는 가평에서 친환경농사를 짓고있는 도농가가 강풍에 파제배가 상품성이 떨어졌다하여 함바운영에 도움이 되고자 친환경 파를 차에 가득싣고 와서 갔다주었는데 차안에서의 파냄새는 보름동안 가시지 않아 차문을 열때마다 파냄새를 맡아야 했다. 함바를 운영하던 사례지아 자매님은 밭에다 심어 계속해서 가져온 파를 쓰셨다. 교동성당에 1박2일 모금을 갔을때의 일이다. 우리본당 친척이 교동관할 아파트를 내주셔서 거기서 지냈다. 더운날이라 냉커피, 냉톡차를 준비했다. 토요특전미사, 아침미사, 낮미사, 저녁미사 4대이 미사를 하기로 하고 아침미사때는 강론만 하기로 했다. 그런데 전날 청년들과 늦게까지 어울리신 보좌신부님이 나오시지 않으므로 엄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생각지도 않게 4대의 미사를 집전하시게 됬다. 당시 교동성당은 전달에 사무실과 교육관을 리모델링 하여 신자들에게 신립을 받았기 때문에 많이 나오지 않을거라며 걱정을 해주신 배신부님께서는 적극적으로 도와 주셨다. 심금을 울리는 엄신부님의 강론말씀은 역대 최고로 많은 봉헌금을 신립 받을수 있었다. 너무 감사하다. 성전을 짓고나서 우리성당에 신립을 받으러 다른 본당에서 왔을 때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봉헌을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비록 교동성당에 하는 봉헌은 아니지만 어려움이 있는 본당에 조금이라도 봉헌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많은이들이 교무금을 책정할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하여 재무위원들은 돌아가면서 매년 강론을 했다. 구역장 반장을 독려하여 구역에서 봉헌하는 때도 있었다. 어느해는 65%까지 교무금을 약정했다. 교무금은 적어도 30분의 1이상을, 형편되시는 분들은 좀더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교무금의 중요성을 생각지 않는 분들이 많은게 아쉽다. 적게한다는 것들이 너무 익숙해져 있다. 성당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내어놓아야 하는 게 아닐까? 구약에서는 레위지파를 위하여 10분의 1을 내어놓도록 하였다. 감회: 허허벌판에 아름다운 성전이 지어졌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 있음을 생각합니다. 재무위원들의 좋은분들을 만나게 해주심이 감사하고 하느님 사업에는 공짜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재무위원들의 가정이 개인적으로도 은총을 입었습니다. 조그만 정성을 보태었을 때 더 큰 것을 주십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 신부님께 꾸중을 많이 들은 생각이 납니다. 그래도 재미있고 기쁘고 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감사드리고 신양생활에도 재무위원들의 좋은만남에서도 그시간 다른일을 하였다면 이렇게 좋은시간을 가질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부님도 많은 애를 쓰심이 생각나고 성전 보면서 고생많이 하신분들 성모회, 함바, 그런분들 보면 내가 한일은 많지 않음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성전건립기금으로 건물을 지었을 때 그 모습이 계속해서 사랑으로 가득채워지는 스무숲성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 가지로 넘치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하고 오랫동안 함께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서로 이해하고 마음이 잘맞아서 즐겁게 할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지금은 긴장이 풀어진 것 같습니다. - 다시한번 마음을 모아서 함께갔으면 좋겠습니다.  
14 여름신앙학교 이야기 -초등부 주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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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2013-03-15
- 여름신앙학교 이야기 - 여름신앙학교가 있는때이면 교사들도 자모회인 모니카회도 각자 바빠진다. 주영덕 보좌신부님이 처음오시고 여름신앙학교가 있던 때의 일이다. 2005년도 주영덕 보좌신부님과 함께 여름신앙학교 보낼 때 가까운 신남으로 물놀이를 갔다. 모니카회에서는 아이들 간식을 준비하려 일찍 저렴한 농수산물 시장에서 장을 보고 물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옥수수, 수박등을 들고 가서 아이들 놀이를 흐뭇한 마음으로 함께하였다. 100여명 정도 함께 물놀이를 할 수 있게 보가 막아져 있고 물도 제법 깨끗하다. 부산한 아이들과 함께 하다가 그만 교사의 안경이 깨지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순간 보 밑에서 놀던 아이들 중 한명이 빠른 물살로 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엄마들은 어머 쟤 누구야 어떻게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깊지는 않았지만 물살이 제법 셌다. 초등학교 2학년 개구쟁이 아이가 딛고 일어서기에는 좀 힘이 부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어머 하는순간 주영덕 보좌신부님은 어느새 이어져 있는 돌담길로 뛰어가 아이를 건져 내었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아이를 안고 오셨다.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저녁엔 성전터에서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이어지는 아름다운 밤이 계속되었다. 새성전을 짓고 2008년도 여름에도 성당에서 여름신앙학교를 하였는데. 성체조배실, 유아실에서 남녀로 나누어 숙박을 하고 음식은 도시락을 주문했다. 새로지은 성당에서 미사로 시작하여 대룡중학교에서 추적놀이를 하고 밤에는 여자아이들은 성체조배실에서 남자아이들은 유아실에서 각자 준비한 침구를 펴고 잠을 청했다. 역시 잘하던 아이들도 저학년인 1학년 아이는 집이 그리워 눈물을 글썽이고 교사와 함께 꼭 끌어앉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새로지은 성당의 성체조배실에서 잠을자는 영광을 감사드리며 함께 계신 감실의 주님께 아이들을 맡겨드리며 설레이며 잠들던 교사는 그런영광이 어디 있겠느냐고 감사해 한다. 다음날, 이웃본당인 퇴계성당까지 순례를 하는 과정을 있었는데 그날 비가 왔다. 우비를 준비하여 퇴계성당까지 걸어서 갔다.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 걸려 도착했는데 힘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행사이다. 1학년 친구들은 떨어져서 칭얼거리기도 했고 선생님이 업고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무언가 해내었던 경험이다. 2009년 여름에는 처음으로 바닷가로 여름신앙학교를 같다. 바닷가 옆의 거진성당에 여장을 풀고 바람이 불어 추운 바다에서 추적놀이도 하고 물놀이도 하였다. 그리고 맛있는 간식. 수박이랑 옥수수도 먹는다. 다음날에는 등대에서 새벽 해돋이 미사를 했다. 아이들은 용감했다. 여름이라 일찍 해가 뜨는 관계로 4시부터 일어나서 등대가 있는 산으로 올라가 동터오를 무렵 미사를 시작했다. 미사중간에 구름이 있었지만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오대석 바오로신부님은 “자 이제 일출을 감상합시다” 라고 말씀하시며 돌아서셨다. 모두들 장엄한 일출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둡던 곳이 어느세 밝게 점점 밝게 빛났다. 그리고 기도했다. 각자 아름다운 기억을 담고.. 일어나서 깜깜한 길을 걸어서 산으로 올라와야 했을 땐 힘들었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소중한 추억이다. 그날 밤 촛불예식시간에는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조용한 가운데 편지를 쓰는 시간 훌쩍우는 아이들이 있다. 함께하는 교사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던 시간이다.  
13 하나되게 하소서 - 초대 사목회장 전명구 미카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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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3 2013-03-13
하나되게 하소서 - 초대사목회장 전명구 미카엘 - 저는 전명구 미카엘입니다. 저는 이 본당이 설립되던 2002년 9월부터 본성전이 봉헌된 2007년 6월까지 4년 10개월간 지금은 속초 동명동성당에 계신 엄기영안드리에 신부님을 모시고 본당 사목회장을 지냈습니다. 제가 사목회장을 하는 동안에 이 성전이 지어졌는데 그때 교우들 참으로 일도 많이 하셨고 따라서 고생도 참 많이 시켰습니다. 오랜만에 이 자리에 서서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 그 이후에 본당으로 오셔서 이 스무숲 공동체 발전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시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당시 이 자리는 허허 벌판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저 앞 큰길까지는 건물은 한 채도 없었고 지금 성당 마당에는 개 사육장이 있어서 개들이 삼백여마리가 있었습니다. 2002년 9월 15일 설립미사 때에도 그 전날 약간의 비가 내린 상태여서 그 냄새와 울부짖는 개소리와 함께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나서 당장 다음 미사드릴 장소를 찾아야 했습니다. 당시 주교님은 천막교회로 시작하라고 하셨지만 곧 겨울은 오고 노약자와 어린이들 때문에 안되겠고, 우선 개소리 때문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분가를 하면 임시 성당을 마련해 주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옆의 농공단지에는 빈 건물이 더러 있었는데 종교시설은 안된다고 해서 수소문 끝에 한주아파트 상가 지하에 약 150평되는 폐학원 자리를 140만원에 6개월로 계약했습니다. 그 건물이 삼성생명엔가에 담보가 되었는데 언제 낙찰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우선 겨울이나 나고 보자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교우들은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발등에 불을 달았습니다. 시간이 있는 사람은 아침부터 매달리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성당으로 퇴근을 했습니다. 건물이 원체 낡아서 천정은 거의 내려앉고 천정위에는 완전히 전선과 배관의 정글이었습니다. 받치고, 꿰매고 칸막이하고 칠하고... 이렇게 해서 5일만에 그래도 깨끗하고 아늑한 성당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9월21일 추석날에 감격의 첫 감사미사를 드렸습니다. 그 후에도 우리의 애환은 계속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1km는 족히 될 거리를 매일 밤 걸어서 빈 성당을 순찰하셨습니다. 2003년 1월 13일 월요일 휴일인 그날도 밤늦게 성당에 들렸던 신부님은 깜짝 놀라셨습니다. 성당이 온통 물바다가 돼 있었습니다. 낡은 스프링클러배관이 동파된 것입니다. 급히 교우들에게 비상을 걸었습니다. 순식간에 모여든 교우들은 동네 양수기까지 동원해서 대충 퍼내고 나니 3시가 다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물난리를 겪은 교우들은 오히려 더 가까운 가족애를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교육관부터 짓기로 하였습니다. 당시는 그 개장 때문에 성당 부지가 확정되지 못했습니다. 2003년7월20일 교육관 착공식을 하고 그 공사장 인부들의 밥값에서라도 성전 건립기금을 마련해 보겠다고 현장식당(소위 함바)을 하겠다고 지금의 사제관자리에 비닐하우스 식당을 차렸는데 3일만에 화재가 났어요. 가스불을 점화하려고 하다가 불이 붙었지요. 자매님들이 놀라 자빠지고 가스통을 내던지던 요셉이는 눈썹이 홀랑 타버렸어요. 지하 성당에서는 11시 교중미사가 끝날때쯤 소방차 싸이렌이 들리는 것 같았는데 이내 성당 터에서 불이 났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부랴부랴 모두 올라와보니 불은 꺼졌고 식당은 철 파이프만 앙상하게 서있었습니다. 눈썹이 타버린 요셉은 경찰서로 조사받으러 붙들려 가고... 혼이 나간 자매에겐 온 동네 청심환 다 걷어다 먹이고... 이내 덤벼들어 그으름 닦아내고 비닐 다시 씌우고, 바로 저녁식사를 해 먹였습니다. 이 식당은 바로 성당 식당이 되고 단체 모임식사는 물론 레지오2차 주회까지 다 거기서 치러 냈습니다. 교육관짓고 결산은 1,100만원이 넘었습니다. 이동식 화장실 사는 돈 25만원을 아낀다고 이 앞 토목공사 때 쓰고 버린 것을 싣고오다 트럭바닥이 온통 오물 투성이가 되기도하고, 폐지 빈명을 주어 팔아 그것도 한달에 20~30만원씩은 벌었습니다. 돈도 돈이지마는 교우 가족들의 마음을 모으는 데에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춘천시 닭갈비 축제에 부스 2개를 빌려 일주일간 닭갈비 장사를 했습니다. 본당 전 교우들이 출동해서 춘천시내 성당 친구들을 다 불러내는 호객꾼이 되었고, 손님 치르느라 닭갈비 먹고 팔다가 남은 닭갈비 먹느라 교우들은 닭갈비에 물려버리고 본당 신부님도 그 이후 닭갈비는 아예 처다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700만원을 벌었습니다. 바자회도 열었는데 비가 억수로 퍼부어서 다른 본당 어느 자매는 하이힐 뒷꿈치가 망가지는 사고도 있었지만 이때에도 2,400여만원의 순수입을 올리고 물건도 많이 남아 두고두고 팔았습니다. 2003년 12월 10일 10시30분 지하 성당에서의 마지막 미사를 드리고 감실을 모시고 나올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격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12월13일 교육관 축복식을 마치고 교육관식당에서 교우가족여러분에게 감사의 큰절을 드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는 직업이 전자 기술자입니다. 20대초에서 시작해서 지금 제가 74세가 되었으니 50여년을 이 기술로 밥을 먹고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큰 은총의 달란트이지요. 그런데 제가 성당 생활을 하면서 보니 저의 이 탈렌트가 쓸모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2000년도에 애막골성전을 지을때에 그성전에 필요한 음향시설일체를 봉헌하였습니다. 애막골 성전을 짓고 바로 스무숲으로 왔습니다. 이 성전에서도 음향일체와 영상기재 일체를 봉헌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를 제게 주셨습니다. 또 저의 노력과 지식으로 봉사할 수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찾아갔습니다. 죽립동성당의 음향보수, 퇴계성당의 음향, 영상설치, 소양로성당, 강촌성당, 철원, 군종성당, 강릉주문진성당, 횡계,진부성당, 곰실, 실레마을공소, 청평미원성당등. 제가 필요한곳이라면 또 찾아가겠습니다. 저는 이 일을 저의 성소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12 성전건립후 -진영균 요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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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8 2013-03-13
성전건립 후 *2대 사목회장 진영균요셉 * ✝ 찬미 예수님 저는 2007년 7.1.부터~ 2011. 6. 30.까지 4년간 제2대 사목회장으로 임명을 받은 진영균(요셉)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극구 사양했습니다만 신부님께서 순명으로 받아 들이라는 말씀에 더 이상 변명할수 없어서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제 임기동안 초대 엄기영(안드레아)신부님, 2대 민상영(요셉)신부님, 3대 고봉연(요셉)신부님. 세분을 모셨습니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희망속에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돌이켜 봅니다. 1대는 내적으로 기반을 다지고 초석을 다지는 성전건립이라는 큰 숙원사업을 이루어 내는 안정기였다면 2대는 성전 건립으로 인한 신자들간 갈등을 해소시키고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것을 모토로 교세확장 및 외적 성장을 이루는 성장기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2대 사목회장으로 취임식을 한 직후 단합된 공동체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신.구 사목위원과 제단체장 상견례 및 단합 대회를 바닷가로 가자고 신부님께 건의 하였습니다. 성당에서 버스 1대만 대주시면 그 나머지는 제가 책임 지겠습니다. 하였더니 흔쾌히 승낙 하셨습니다. 오랜만에 미시령을 넘어 속초 앞바다 전경과 상쾌한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예약된 회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동안 성전 건립에 힘써오신 전임자분들 수고 많이 하셨다는 감사의 인사와 막중한 책임을 맡게되는 후임들에게 적극 돕겠다는 전임자들의 화답으로 화기 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술잔이 오가는데 제가 평소 2잔만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그날은 정신력으로 30여잔을 받아 마시고 혀가 꼬부라져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스무숲2호가 새로 출발하는데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는 계기로 선진과 후진이 함께 결의를 다지는 화합의 장을 만들어 냈습니다. 임기중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2009년 여름 큰 장마로 안마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배수관으로 역류해서 본당 지하실이 다 잠겼을 때입니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황급하게 본당에 와보니 성체조배실은 완전히 잠겨 형제 자매님들이 정신없이 세숫대야로 퍼냈으나 물은 점점 불어나 춘천시청 상황실로 긴급 요청을 하여 양수기와 수중 펌프카로 밤늦게까지 뽑아내 수습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건설 도시국장, 안마산 개발업체 이사, 춘천시의원을 대동시켜 현장의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대책을 세우도록 강력히 요구하여 포크레인은 항상 대기 시키고 곧 조치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비만 쏟아지면 노이로제에 걸린 상태에서 성당에 올라와 한바퀴 돌면서 확인을 하였는데 교육관위쪽 흙더미가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어느날 또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날 새벽 초대 회장님께서 “큰일났어 빨리 올라와봐” 깜짝놀라 정신없이 와보니 성당 도로쪽그로 흙탕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다급히 부회장을 불러서 물길을 돌리려고 비를 흠뻑 맞으면서 맨홀 큰크리트 벽을 돌로 쳐 보았으나 끄떡도 하지 않아 할수없이 건설업에 종사하는 신자에게 오함마를 가지고 빨리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왜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길은지.. 물길은 점점 불어나 완전히 큰 개울물로 변해지고 있었다. 한참만에 온사람은 오함마가 없어서 그냥왔다는 한심한 대답만 들었다. 성당 창고에 혹시나 하고 가보니 문은 잠겨져 있어 관리장에게 수차례 전화를 하였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시공업체 책임자도 전화를 꺼놓아 또 성당이 물에 잠기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입술은 바싹바싹 타 들어가기 시작하고 너무나 속이 상했다. 다급해진 나머지 주님을 찾았다.. 마침 시공업체 인부가 순찰하러 나왔다가 목격하고 즉시 오함마로 벽돌을 깨고 포크레인으로 물길을 돌렸더니 서서히 흐르는 물줄기는 줄어 들면서 쏟아지는 비로 도로변 흙탕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하게 씻겨져 내려가고 마침내 비도 먿기 시작 하였다. 새벽에 전화를 받고 집에서 나간지가 꽤 오래 되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걱정이 되었는지 아내 바울리나가 올라와서 보고 하는말이 별거 아니네 하는데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다. 출근하는 관리장이 눈에 뜨여 욕을 바가지로 퍼부었는데 지금까지도 후회 스럽다. 결국은 시청에 진정서를 제출하여 얼마후 800mm 큰관으로 양쪽 두 군데로 물이 흐르도록 공사를 완료하여 현재 2년째 물난리 없이 여름을 보낼수 있었다. 아름다운 성전은 지어 놓았으나 미사가 끝난후 비만 오면 의지할때가 없어서 바로 신자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주일마다 자매님들이 물품판매할 장소로 젊은이들이 천막을 치고 또 접어 두어야 하는 번거로움과 세찬 비바람으로 천막이 날아 사무실 이중 유리창을 깨트려 큰 피해를 입게 되어 커피한잔 나눌수 있는 만남의 장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루어 2010년 3월 판매대 및 휴게실을 설치하고 빈첸시오에서 운영하는 자판기를 교육관에서 옮겨 놓았더니 커피를 마시면서 환담을 나누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볼 때 흐뭇한 마음으로 글 옆을 지나가게 된다. 빈첸시오 자판기 판매의 이익금도 배로 늘어났고 또한 성전건립과 부채를 값는데 고생만 한 신자들의 사기앙양을 위하여 2009. 9. 13. 본당설립기념 한마음 체육대회를 대룡중학교 처음으로 전신자가 하나되어 체육대회를 통해서 응집력과 결집력을 볼 수 있었고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잔치로 푸짐한 경품과 구역별로 음식을 나누는 아주 뜻깊은 행사였다. 특히 밀알 재활원 수녀님이 흥을 돋구면서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2010년 5월 성모성월을 맞이하여 성모동산 및 주차장 확장, 조경공사.. 성모동산은 사목위원 집안되는 사업가가 2,000만원 봉헌하여 그 바탕으로 시작되었으며 강원대학교 조경을 담당하고 있는 경력이 화려한 업체를 선정하여 인제 내린천에서 운반되는 자연석으로 춘천 교구에서 제일 아름답게 꾸며졌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새로 단장한 성모 동산 앞에서 성모의밤 행사를 하였다. 아름답다는 소문으로 서울,인천에서도 사진 작가가 와서 찍어갔다. 지금도 마찬가기지만 주차장 부족으로 윤교장 땅 울타리 사이경계를 더 찾아서 성당주변 조경공사와 함께 넓혔는데 젊은이들의 소원인 족구장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저는 이공사 기간동안 사무실을 결근하고 1달동안 성당으로 출근하여 감독을 하였습니다. 2010년 3대 고봉연 신부님이 부임하신 이후 10월 전신자를 대상으로 성지순례를 통하여 쉬는교우, 소극적인교우, 신자 배가운동의 일환으로 버스12대를 대절해서 죽산성지로 신앙을 다지는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2011년 6월 사제관 뒷산 매입 매입하게된 동기는 성당 부지가 자연녹지로 용적율이 초과되어 수녀원을 신축할 수 없다는 것이 첫째 이유고 일부 신자들이 십사처를 산에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주교님께서도 선목사제관을을 지으면서 성당 주변에 식당이나 기타 시설이 들어올 염려가 있으니 땅 매입을 했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피력한바 있었다. 주차장 옆 윤교장 땅은 평당 200만원이상 달라고 하여 포기 하였고 결국 교육관 위 자투리 땅과 산을 매입하여 현재는 건축할 수 있는 용적율이 해소 되었다. 산 매입은 민신부님때부터 검토 되었으며 시설 자문위원과 사목회에서 수차례 걸쳐 논의된 끝에 결정된 것이다. 2011년 6월 교육관 옥상 수녀원 건립 신축 허가 승인 여러분의 소망이던 수녀님이 부임하게 된다는 주교님의 공식적인 통보를 받고 수녀원 건립 계획을 세워 어렵게 승인 허가를 받아 건축이 시작 되었다. 저는 사목회의때 재무주간과 충구역장, 평협회장 4간부를 참석하도록 요청하여 같이 의논하고 협조를 구하는 유기적이고 탄력적인 공동체로 이끌어 가는데 노력하였다. 수녀원 건축과 땅 구입으로 신입 약정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으로 하느님을 멀리하는 교우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운 신자는 기도로서 힘을 보태시면 되시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스무숲 공동체가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있었던 것은 신자분들의 기도와 일치된 힘을 모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제 상징적인 10주년을 맞이하는 스무숲 공동체의 모든 가정에 축복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11 10년을 돌아보는 추억 -박경선 요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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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 2013-03-11
10년을 돌아보는 추억 - 박경선 요나- 직장일로 춘천에 오게 되었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춘천 오기전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성당을 소홀히 했었는데 2003년 스무숲성당의 아버지모임에 가게 되었다. 미카엘형제의 계속적인 권유로 그래 다시 시작하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성격상 하면 열심히 하고 안하면 안하는 성격이어서 성당에 열심히 하였던 것 같다. 특히 스무숲 초창기때는 성당이 전부인것처럼 직장과 성당을 오가는 생활을 하였다. 레지오, 양업회에 나가면 성당에서 필요한 일을 찾아 하고 일이 끝나면 남성교우들과 친교의 시간이 길어졌다. 내가 이렇게 성당일에 열심히 하는 것이 집이나 성당에서나 직장에서나 최선을 다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그런나를 못마땅해 했지만 그런모습이 내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날 직장에 출근하던중 미끄러운 길로 교통사고가 있었다. 사고가 크진 않았지만 심장에 약간의 무리가 와서 병원 치료를 하였는데 치료중에 치명적인 균이 혈관에 들어왔다. 그때는 정말 고래 배속에 들어간 요나처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오게 되었다. 이 일로 또 다른 세상이 시작된 것 같다. 아내는 평상시 가정보다 성당생활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못마땅해 하였던 모습을 반성하고, 남편인 나를 당신아들이니 주님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후로 아내는 성당에의 일을 도왔다. 늘 아내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성당이 내집같다. 사목회 총무를 맡으면서 신자와 신부님의 다리역할을 하면서 신자와 신부님의 친숙한 활동에 의미를 많이 둔다. 다만 일을 할 때 행사위주로 일을 하다보면 중요한 일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많이 아쉽다. 행사를 치루기위해 일을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사람은 뒷전이 된다. 1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를 하게 되는데 해치우는 행사가 되지 않고, 사목위원이 중심이 아닌 전신자가 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또한 준비하는 사람들간에 사랑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무숲성당은 누가 상처를 주든 안주든 내 집인 것이다. 성당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 그렇지만 봉사를 하다보면 어련운 점이 많다. 하느님을 믿고 일을 해야하는 신앙인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 같다. 선조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켰던 신앙인데 우리도 신부님이 아닌 신자들이 이 신앙을 지켜가야 할 것 같다. .... 이사를 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하다 보니 매일 성당에 와서 살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나만 좋으면 되지 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많이 있었다. 성당에 오면 재미있고. 함께하는 교우들이 좋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정의 일들, 아이들의 일들을 아내에게만 떠 맡겼던 점에 대해 잘못되었다는걸 깨닫는다. 지금은 성당에서의 활동 이야기를 아내와 많이 나눈다.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 하고 거기에 더 의미를 둔다. 모든이가 행복하기를 바래본다. 10주년을 맞아 더욱 어려웠을때를 잊지 않고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스무숲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드린다.  
10 10년을 돌아보며 -장계순 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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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3 2013-03-08
10년을 돌아보며 -초대 구역장 장계순 안나- 초창기 총구역장을 맡아 열심히 힘들었지만 기쁘게 맡은바 소임을 다한 것 같습니다. 스무숲 성당이 효자동 성당에서 분가 당시에는 신자수가 1,174명이었으며, 이중 미사참례 신자수는 1/3정도. 자리가 잡혀있는 성당에서도 총구역장은 어렵다고 하는데 신설본당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하면서 평소 저를 아껴주시던 수녀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축하한다는 말씀과 함께 예수님께서 일을 맡기실때에는 할 수 있기 때문에 맡기신 것이라며 “잘 할수있도록 기도 많이 할께요”라고 하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수녀님의 그 말씀에 마음 든든해지고 큰 힘이 되어 주었으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렸고, 주임 신부님께서도 초대 총구역장은 연혁에도 이름이 실리니까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느냐고 농담으로 말씀하시며 힘들고 어렵겠지만 해보면 보람도 있으니 잘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7개구역 21개반으로 편성되었고 반장들은 냉담자표시를 냉강,냉중,냉약으로 반적부에 표시하고, 전 신자 가정방문이 시작되고 잃어버린 양들을 찾는데 힘이 모아졌습니다.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는 반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구역임원들은 저녁7시에 집을 나와 미사준비를 하고 미사후에는 반원들 단합을 위하여 늦게까지 이야기하며 준비한 음식을 먹고 나면 11시나 되어서 미사가방을 들고 집으로 오곤 하였는데. 제의가 구겨질까 걱정되어 장롱문에 걸어놓고 잠을 자다가 잠결에 하얀제의를 보고 놀란적도 있습니다. 전 구역 반미사를 끝나고 전신자 성경쓰기가 시작었는데, 구역회가 있는날 각 반장님들이 성경쓰는 노트를 걷어와서 주임신부님의 사인을 받았지요. 전신자가 하루에 5분만이라도 성경을 읽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삶으로 실천하도록 성경말씀을 작은 카드에 예쁘게 적어 주임신부님께서 직접 만드신 1단 팔찌묵주를 구,반장들에게 나누어 주며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당부하셨습니다. 남춘천지구 구.반장학교가 개강하면 각 본당으로 교육을 가야하는데 우리 성당에는 차량이 없어 사목회장님께서 회사 봉고차량을 손수 운전하여 주시면서 하루종일 구역일을 즐겁게 도와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초창기 구역에서 하는일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솥밥 나눔의 집 봉사가 한달반 정도에 각 성당으로 1주일씩 당번이 돌아오면 구역으로 당번을 지정하여 봉사를 하고, 학교에서 점심 급식이 끝나면 남은 밥과 반찬을 차량으로 실어 왔고 차량봉사는 구역회 총무가 전담기사 입니다. 재활용품 정리도 구,반장,양업회원들이 함께 어우러져 수익을 내기도 하고. 바자회때에는 나눔의 집 책임자로 봉사 하시던 보나자매와 연결이 되어 막걸리를 빚어 보나표 막걸리도 팔아 수익을 내는데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교육관을 짖기위한 1차 약정서를 반장들을 통하여 배부하고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신부님의 당부를 전하며 반장님들은 열심히 발로 뛰었습니다. 2004년도 두 번째 바자회때 6구역에서는 하루종일 김밥을 말아가며 우리들은 김밥처럼 함께 어울어져 하나가 되었고. 구역별로 다양하게 음식을 준비하여 맛있게 드셨다고 여러신자들이 칭찬과 격려를 하여주실 때에는 보람도 느낍니다. 각 반장들은 성당 바자회티켓과 이어서 교구 사회복지 바자회티켓을 파느라 맘고생도 많습니다. 닭갈비 축제 때에도 구역에서는 당번제로 일을 하고 형제님들은 서빙도하고 불판을 닦으시면서 열심히 도와 주고 모두 함께 하였습니다. 타 본당으로 성전건립 모금을 하러갈 때에는 예의로 한복을 차려 입었는데 구역임원들은 눈이 하얗게 내린 새벽에 한복을 입어 추위에 얼마나 떨었는지 ... 약정서를 봉헌함에 넣어 주시는 신자분들에게 우리들은 깊은 절을하며 고마움을 간직했는데 훗날 우리성당에 성전건립모금을 하러 오는 본당이 있을때에는 꼭 도와드리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2006년 성전건립 2차약정서가 배부되면서 성전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함바집을 운영하기로하여 구역, 레지오, 성모회를 당번을 정하여 하였고 주관은 성모회에서 했습니다. 그러나 평일에는 돌아가면서 돕지만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은 가족들이 함께있는 관계로 오지 못하여 아침과 저녁밥 당번을 그나마 자유로운 총구역장을 맡고 있는 내가 할수있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교육관만 있어 캄캄한 새벽에 함바집에 가는 것이 무서웠고, 추석이이 지나면서 새벽은 점점 캄캄해져 두려움이 컸을 때 함께 하시겠다고 오신 구역장님이 예수님이셨고 구세주였습니다. 2007년 3월1일 아름다운성전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헌당식에 신부님의 말씀처럼 저희 가정에는 가문의 영광이 있었지요. 남편과 함께 예물 봉헌을 드리는 은총을 받았으니.. 전국에서 아름다운성당으로 속하는 스무숲성전을 하느님께 봉헌하게 되었음이 자랑스럽습니다. 스무숲공동체는 13구역 67개반으로 늘어났으며 공소는 신남과 굴지리공소로 신자들도 많아졌습니다. 약 5년동안 총 구역일을 하면서 되도록 둥글게 모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추진력이 있고 일을 잘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원래 나의 모습은 어디가서 말도 잘 못하는 쑥맥이었지요. 총구역장을 맡으면서 자신이 망가져야만 일이 해결되다는 진리를 깨달은 어느날부터 당찬 여장부처럼 들이대고 주님께서는 이러한 저에게 이끌어 갈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줄곧 같이 했던 총무 또한 그러했습니다. 2007년 6월 어느날 신부님께서 묵주반지를 주시면서 남편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신부님말씀은 남편이 총 구역장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신부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총구역장일을 하면서 스무숲신자들을 통하여 예수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남편이 퇴직후 성당에서 바쁘고 기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커다란 은총임을 깨달으며 감사를 드립니다. “걱정은 말라 두려워 말라 주님 계시니 아쉬움 없다. 걱정을 말라 두려워 말라 ” 주님안에서 아멘.  
9 아름다운 성당 스무숲 성당 - 유연옥 엘리사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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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 2013-03-07
아름다운 성당 스무숲 성당 ** 유연옥 엘리사벳 어느덧 10주년 행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10년전 퇴계 한주 지하에 성당을 꾸밀 때 하느님께서는 미리 준비시키시느라 효자성당에서 분가하기전 제대봉사회를 만드셔서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5명이 스무숲으로 분가해 신부님께 전례를 배워가며 실수토성인 저희를 어여쁘게 쓰셨습니다. 분가할 때는 추석전이라 집에 추석 준비하랴, 성당 제대 꾸미랴 얼마나 바빴던지... 2 002년 10월 2일에 정식으로 베로니카회(제대봉사)로 창립되었습니다. 지난 10년을 생각하면 하나하나가 추억으로 남습니다. 수녀님이 안계셨기에 전례력을 신부님께 배워가며 제대를 차렸고 바깥구유를 꾸밀 때 이끼가 필요해 툇골에 갔을 땐가 전날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눈을 치우며 이끼를 걷어왔던 일, 그해 결울엔 눈도 많이 오고 왜 그리 추었는지요. 대성당 상량식때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천장 대들보에 보자기 씌우느라 사다리 차 타고 올라가 상량식 준비하던 일, 어느해 부활 대축일엔 제병을 적게 담아 모자라서 성체를 못모신 분들도 계셨었지요. 그때 베로니카회 단체로 불려가 신부님께 얼마나 혼이났던지.. 그러면서도 학창시절 생각하며 공부 못해 선생님께 불려가 혼난것같다며 서로 마주보며 웃었던일, 이렇게 혼이나도 한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했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봉사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끔은 실수도 하지만 베로니카회 제대봉사 만큼은 최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라고 미으며 감사기도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어여쁘게 보시고, 총구역장도 시켜주시어 4년을 했네요 지금은 전례와 베로니카회로 다시 돌아와 옛생각하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할 수 있도록 저를 항상 도와 주는 저의 남편 요아킴(냉담중)에게도 감사를 전하며, 주님 건강 주심에도 감사드립니다. 주님 영광찬미 받으소서. 아멘  
8 스무숲성당 10주년을 맞이하여 - 전미숙 릿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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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6 2013-03-07
스무숲 성당 10주년을 맞이하여.... -전미숙 릿다- 스무숲성당 설립 10주년 회상의 글을 부탁받았을 때 수많은 사연들이 아스라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막상 글로 옮기려 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또 내가 무슨 자격으로, 등등 이런저런 생각에 쉽게 글을 쓰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효자동성당에서 스무숲 성당으로 분가하면서 겪었던 일, 추억하고 싶었던 일 등을 써보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저는 스무숲성당에 와서 제대봉사회인 ‘베로니카회’에 권유를 받아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베로니카회에서 어떤 일를 하는지 잘 알지 못한 채 언니들의 도움을 받으며 따라가기 바빴습니다. 제구이름도 잘 모르고, 제의는 어떤 색이 있는지? 전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 둘 씩 배우며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수는 자주 반복되었고 자책도 많이 하였지만 초대 사제이신 엄기영 안드레아 신부님의 따끔한 충고와 실수를 두 번 다시 하지 않도록 끊임없는 교육과 용기덕에 전례에 대해서 조금씩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스무숲성당은 ‘맨땅에 헤딩’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합니다. 상가 지하에서 교육관, 성전까지 건립할 수 있도록 스무숲 신자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이 지금의 스무숲 성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성전건립기금 마련으로 바자회, 닭갈비 축제 참가, 이웃성당에서의 모금, 함바 등 많은 봉사들을 전 신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하였기에 지금의 성전에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열정과 솔선수범은 우리 신자들이 더 똘똘 뭉칠 수 있게 만들어주신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 냉난방비, 전기료 등 사소한 것들까지도 줄이고, 아끼시는 신부님... 겨울에는 난방도 하지 않은 채 지내시기도 하면서 우리 신자들에게 성당에 대한 더 많은 애착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신부님의 열정과 스무숲성당 전신자들의 애착심으로 인해 지금의 성전이 더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 스무숲 성당 10주년 기념 바자회를 하는데 예전에 바자회 하였을 때가 생각납니다. 성전건립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바자회 티켓을 이웃본당, 친구, 모임 등에 가서 파는 열정도 보여주었습니다. 바자회하기 시작 전부터 물품정리, 먹거리 판매를 위한 시장 보는 것 등 여러 일들을 스무숲성당 전 신자들이 힘을 합하여 노력했던 모습들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티켓판매하면서 우리 힘으로 성당을 짓는다는 마음이 간절하였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몫보다 더 많이 더 열정적으로 하였던 것 같았습니다. 가끔씩 10년 전을 생각해 보면, 그때는 어떻게 열심히 봉사했을까하는 물음을 갖기도 하지만 내 일이 아니고 스무숲성당이라는 하나의 목표가 있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던 것 같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합니다. 스무숲성당이 지하성당에 세워졌을때 저희 아이들은 5학년 4학년이었습니다. 주일학교가 열고 큰아이는 반주를 하였습니다. 주말이면 성당에서 살다시피한 저이기에 아이들도 주일학교 반주를 빠지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것. 큰아이에 이어 작은아이도 성당에서 반주를 하는 성당에 없어서는 안될 자리를 하고 있었지요. 함께 모시고 있는 시아버님도 오랜 냉담을 풀고 견진성사를 받으셨고 요아킴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우리가족은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성가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명절이면 많은 가족들이 우리집에 모입니다. ME를 열심히 하는 우리 부부는 또한 가족들에게도 좋은모습으로 비추었던것 같습니다. 모임이 있는날이면 우리집에 모인 어려운 친척들은 어서 가라고 재촉해 주었고 우리는 성당의 일을 하느님일을 잘 할수 있었던것 또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저는 유아세례를 받은 남편을 만나 성당에서 혼배를 하였기에 늘 마음속에 성당에 가야지 라는 생각이 있었으나 아이가 어려서 나가지 못하고 있다가 아이들이 조금 큰 후에 용기를 내어 효자동성당에 찾아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있었는데 반모임에 나가던중 반장님의 권유로 제대봉사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인연이되어 지금까지 계속해서 제대봉사를 합니다. 주님가까이 있는것. 마리아의 역할을 하기 위해 더욱 기도해야함을 느끼면서.. 스무숲성당이 기초를 다질무렵 반모임을 하는동안 총구역장과의 만남으로 젊다는 이유로 총구역회 총무를 6년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마르타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언니들의 칭찬과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바쁘게 성당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가 힘든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기쁨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많은 수고로움속에 웃음꽃이 있기에 감사합니다. 스무숲 가족은 말 그대로 가족입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가족.... 지금은 10주년을 기념하지만 20년,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더라도 스무숲성당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7 행복한 스무숲 공동체 -황현경 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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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 2013-03-04
행복한 스무숲 공동체 - 황현경 비아 - - 2004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7년여 동안의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회를 하면서 지냈던 소중한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스무숲의 모본당인 효자성당에서 열심히 주일학교 교사활동을 하다가 집이 퇴계주공으로 이사를 오면서 당연히 교적을 옮겨야 했지만 함께 활동하던 교사들과 아이들과의 헤어짐이 두려워 쉽게 스무숲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스무숲 주임신부님의 눈에 딱 걸리면서 성당이 분가한지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저의 스무숲 성당에서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저에게는 고난과 역경의 지하성당 시기 때의 기억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로지 깨끗하게 새로 지어진 교육관에서의 출발이라 그런지 아는 사람 한명 없는 이 스무숲에서의 생활이 마냥 힘들고 두렵지만은 않았나봅니다. 오히려 새로 시작한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듯 오자마자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상황이 아주 비슷한 청년 두명과 함께 그렇게 셋이서 중고등부 교사회를 결성하고 새로운 아이들과 조금씩 친해지며 많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소소한 정을 나누며 그렇게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지요. 보좌신부님이 안 계신 여름신앙학교는 한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었지만 또 안계신대로 다른 재미도 쏠쏠했던 것 같습니다. 신앙학교 마지막날 밤을 오로지 아이들과 교사들끼리 그렇게도 짜릿하고 신나게 보낼줄이야~ 그날 밤 아이들과 이런저런 게임이란 게임은 다해보며 날밤을 셋던 것이 화근.. 결국 저질체력인 교사들의 늦잠으로 인하여 아침프로그램을 못하게 되었지요. 아이들은 그저 신나고 좋았겠지만 이사실을 신부님께서 아시면 교사들을 엄청 꾸중하시겠지요?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 입단속만 잘하면 아무도 모르겠지라며 안도했지만 결국은 프로그램 중 신앙캠프 신문 만들기에서 교사들의 늦잠이 이슈되면서 고스란히 그 신문은 교육관 입구에 떡하니 붙여지게 되었죠. 신부님께서 겉으로 크게 꾸중하지 않으신걸 보면 그래도 교사들과 아이들끼리였지만 신나게 그리고 무사히 캠프를 지내고 온 것이 마냥 대견스러워 보이셨는지도 모릅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요~^^ 그 해 가을 주일학교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바로 보좌신부님께서 부임하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 이 얼마나 기다리던 소식이던지.. 교사와 아이들 모두 파릇파릇한 새 신부님인 주영덕 비오 신부님을 기쁘게 맞게 되었습니다. 학생회도 처음으로 결성되고 아이들 스스로 주일학교에 대한 의욕도 넘쳐나면서 점점 아이들의 숫자도 늘어갔지요. 그렇게 스무숲의 첫 보좌신부님과도 신나는 추억을 만들며 지냈었는데 이 시간이 정말로 그리운 추억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었죠. 1년뒤 우리본당을 떠나신 신부님은 그 뒤로 2개 본당에서 활동하시고 꽃다운 33세로 선종하시며 우리곁에 영원한 사제로 남으셨지요. 이날 신부님과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가시는 길 우리 학생들과 함께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드리고 왔어요. 첫 보좌신부께서 떠나시고 두 번째로 부임하신 보좌신부님도 파릇파릇 새 신부님이 오셨어요~ 새로 생긴 성당이라 새 신부님들만 오시나.. 이렇게 이야기들을 해댔지요. 두 번째 보좌신부님이 오시고 학생회 밴드부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해마다 새 성전을 짓기 위해 청년일일호프를 했었는데 그 무대에 우리 학생밴드가 처음으로 공연을 하게 되었지요. 처음엔 참 어설프더니 역시 노력한 만큼의 좋은 결실을 맺어주시는 그런 순간이었어요. 학생밴드가 그 이후로 계속 맥을 이어오진 못했지만 해마다 그 때 그 아이들만의 특색이 있는 거니까요. 또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을까요? 해마다의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다 보니 글이 점점 길어지는데요. 여기서 청년회 얘기로 넘어오자면 우리는 해마다 성전건립을 위한 기금마련으로 일일호프를 열었습니다. 청년회에서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기에 온힘을 다해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성과도 좋았고 일일호프만큼은 우리 청년회가 제일 잘해~라고 자화자찬을 할 만큼 해가 거듭될수록 발전해갔지요. 일일호프에서 빼놓을 수 없던 건 바로 청년회의 장기자랑 준비였는데요. 처음에는 서로 예쁘게 화음을 맞춰 성가를 부르던 것이 어느 해 부턴가 혈란한 댄스로 바뀌어 매해 청년들은 춤 삼매경에 빠지며 일일호프의 하이라이트를 춤으로 장식하게 되었죠. 춤 선생님을 영입해서 전문적으로 배워보기도 하고 연습실을 빌려서 연습하기도 하고 춤에는 영 소질이 없던 청년들도 계속 함께하다보니 흥미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즐기게 되고 모두 춤에 대해선 열정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일일호프를 준비하며 이렇게 즐거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스무숲 여자청년들이 기가 세다는 사실은 여러 성당 청년들이 인정할 정도였는데요 이렇게 기가 센 여자들이 뭉쳐지기까지는 남자청년들의 지고지순한 희생도 필요했고 여자청년들끼리의 다툼도 필요했습니다. 서로의 각기 다른 생각들을 펼치다보면 그것이 다툼이 되기 마련이지만 그것들을 잘 풀고 이해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서로의 생각을 받아들일 줄 알고 이로 인해 서로 더 잘 알게 되면서 끈끈한 정이 생기는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 청년회는 정으로 얼마나 똘똘 뭉쳐있었는지 어디 새로운 청년이 들어올려고 치면 조금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울타리를 치고 살았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공동체나 완벽한 공동체는 없기에 일단은 잘 살아보려고 애쓰고 그러다가도 어쩌다 삐걱거릴 수도 있고 그러다 다시 으쌰으쌰하며 일어날 수도 있고 다 그런 생활의 반복인 것 같습니다. 그런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거 아닐까요? 전 지금까지 짧지 않았던 스무숲에서의 신앙생활을 함께 추억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거들짝을 만난 것만으로도 스무숲 공동체에 참으로 큰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감사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젊은 청년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이 그 감사함에 대한 보답이며 우리 가정의 참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스무숲 공동체 안에서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꿈꿔봅니다~  
6 봉헌의 의미 - 김호종 F. 하비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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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 2013-03-04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스무숲 교우 여러분! 주님 은총 안에 평안 하신 지요?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신앙" 안에서 과연 봉헌이 무엇인지?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봉헌에 대하여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봉헌의 의미와 실천적 삶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봉헌의 삶을 사는 것인지 이론상으론 다 알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봉헌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듯 합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뿌리를 둔 봉헌은 하느님의 것을 다시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의미에서 볼 때, 쓰다 남은 조각을 조금 떼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다시금 그분께 기쁜 마음으로 내어 드린 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는 순전히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의 힘으로 살아 감을 주저 없이 자주 고백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는 우리의 봉헌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답이 정확하게 나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봉헌에 대한 말씀은 이미 성경과 교회 가르침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미 알고 지내 왔던 봉헌 이지만, 얼마나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봉헌 생활을 하고 있는지?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처럼, 실제로 시간과 물질과 영적인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특별히 나를 빚어 만드신 것도 하느님 자신이기에 나를 온전히 봉헌 한다는 것은 원래의 주인이신 하느님께로 향해 나아가는 것이 되며,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본분이 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삼위일체이신 주님을 묵상하며 하루에 성호경을 약30회 정도 봉헌 합니다. 성부(나를 만드신 하느님 아버지)와 성자(나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예수님)와 성령(위로자이신 빠라끌리또) 께서는 저와 저희 가정을 지켜 주시고 축복 하소서. 아멘.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 창조의 사랑과 구원의 사랑, 그리고 위로와 보호의 사랑을 한결같이 베풀고 계심을 이렇게 고백 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고백과 깨달음이 저로 하여금 봉헌 생활을 소홀히 할 수 없게 도우셨습니다. 그 크신 사랑에 결코 비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응답으로 도리를 다해야 겠다는 생각과 의지를 마음에 깊이 새기게 했고, 성령께서는 많은 체험을 통해 깨닫게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마음으로 사랑해 주시지만, 그 사랑을 받아 들이는 자녀들의 모습과 태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의 역할에 맞는 달란트를 기쁘게 봉헌하도록 원하셨지만, 우리들은 궁색한 변명과 인색한 마음으로 신앙 고백과는 다르게 겉모습만 드리고 있는 듯 합니다. 하느님을 진심으로 믿고 그 사랑을 체험했다면 이젠 입으로가 아닌 가슴으로 고백해야 마땅할 것이고, 봉헌 또한 자녀된 도리로서 지극히 자연스럽고 사랑스런 행위로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은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눌 때 그 가치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봉헌 또한 하느님께 정성을 다해 바쳤을 때, 우리 각자의 양심은 과부의 헌금을 다시금 되새기게 할 것입니다. 나의 작은 정성이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영혼 구원을 위한 소중한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기꺼이 봉헌 할 수 있는 자녀가 되길 기도 합니다. 아멘.  
5 10주년 단상 - 김영화 야고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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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 2013-03-04
10주년 단상(斷想) - 김영화 야고보 - 우리 스무숲 성당이 설립된 지 10년이 되었다. 10주년 행사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벌써?”라는 느낌과 함께 10년을 대수롭지 않은 시간으로 생각하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아닌가? 그동안 너무 숨가쁘게 살아온 것도 같고 길어진 평균수명 탓에 시간에 대해 건방져짐도 사실일 것 같다. 사실 지금의 10년은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가속화한 세상의 변화 속에서 과거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강산의 변화를 몇 차례나 포함하는 더 큰 변화의 10년이 아닌가? 우리 스무숲 성당의 역사는 더 큰 변화의 10년일 것 같다. 안마산 자락 후미진 곳. 호젓한 산책로 옆, 일시 쓰레기 매립까지 이루어졌으며 개 울음소리로 시끄러웠던 곳에 어느덧 육면체의 교육관과 돔형 본당, 성모동산이 예쁘게 자리를 잡고, 사제관, 수녀원이 들어섰고 십자가의 길 동산까지 마련 중이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라고 할 만하다. 이제 신자 수 기준 춘천 최대의 본당이 되었다는 사실은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진행된 본당 설립미사나 상가 지하 성당의 옛 기억들과 대조를 이루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큰 변화이며 큰 축복이다. 정말이지 우리 성당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예쁜 성당에다 오시는 신부님마다 모두 그리 좋으시니 어찌 축복받은 성당이라 아니 할 수 있을까? 본당의 기초 마련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셨던 초대 신부님에, 더없이 맑은 심성으로 우리 마음을 정화해 주신 두 번째 신부님, 그리고 새로운 10주년의 시작에 잘 어울리실 세 번째 주임신부님, 이제 좋으신 수녀님까지 오셨으니 여기에 더 바랄게 무엇이 있을까싶을 정도이다. 단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면 ‘좋은 신자’일 것이다. 그렇다. 좋은 신자는 좋은 교회 공동체 형성을 위한 가장 핵심적 요소이다. 다행히 우리 주변에는 성당 일을 집안일 못지않게 아니 더 큰 비중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많은 교역자, 천사신자, 그리고 숨어있는 훌륭한 신자들이 많아 주변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포함하여 평소 소극적 참여에 자주 머무르는 많은 가톨릭신자들에겐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이다. 특히 설립 초기의 열정과 대비되는 요즈음, 왠지 미안해짐은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닌 것 같다. 이는 우리 성당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한 신호일 수 있어 위안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앞에 한층 안정된 교회로서의 10년, 100년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안정이란 좋은 것이지만 동시에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해이와 나태는 경계해야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을 가능으로 바꾼 설립 당시의 많은 분들의 열성이 남아 있고 필요할 때는 꼭 주시는 하느님이 가까이 계시는데 우리가 지레 무엇을 걱정하랴 만은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도우시는 분이시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지난 10년을 잘 정리하고 새로운 10년을 잘 시작하겠다는 의욕과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나는 개인이나 공동체이건 언제나 적정의 위기의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우리의 새로운 10년도 끊임없는 개혁과 변화에 의한 도전의 10년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변화와 도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사명 중의 하나이다. 달란트를 받고 땅에 묻어둔 자가 내침을 받는다는 성경 말씀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가만히 있는 것도 퇴보이며 스스로 전기를 마련하는 자가 승리자가 되는 것은 세상의 진리와도 일치한다. 우리 공동체도 적당한 위기의식으로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하며 모름지기 교육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찍부터 교회는 신앙 교육은 물론이고 사회 모든 분야 교육의 메카 역할을 수행해 왔다. 국가 또는 사회주도의 교육 기능이 강화된 오늘날에 와서도 교회가 가진 사회적 교육 기능 은 결코 작지 않다. 교회는 특히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고칠 수 있는 곳이란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교육기관이다. 평소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사회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키는 곳이다. 우리의 10년 역사 속에서도 면목을 일신한 좋은 변화의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열심히 봉사하면서 자신의 성장까지 일군 모습들이 떠오른다. 매우 특이한 것은 성당이 매우 효과적인 교육장이면서도 그 참여에 경쟁이 없으며, 언제나 그 기회가 열려 있는 곳이란 점이다. 본인의 뜻과 의지만 있으면 언제나 참여의 기회가 주어지며 기다리고 격려해주는 많은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이 바로 성당이다. 참여가 너무 손쉬운 것이 소극적 참여에, 열외자까지 양산하는 악순환의 원인이 될 정도이다. 누구나 무서워하는 게 열외자 취급을 받는 일이지만 교회 일에 있어서만은 쉽게 생각하는 것도 포용이 전제되어 있는 곳에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참여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만은 절대 무작정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기록된 버나드쇼의 묘비 글이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우물쭈물하지 말고 나 자신이, 내 가족이 참여의 마당에 들어 설 수 있도록 서두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이게 바로 자신을 위한 길이며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우리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새로운 10년이 우리 모두가 교회를 잘 이용하는 기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바람은 특히 미래를 위한 꿈나무들인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하고 싶다. 세상의 부모들은 모두 자식들이 공부 잘하기를 원한다. 공부에 관한한 무조건적이다. 많은 경우, 공부라면 다른 모든 걸 희생할 각오까지 되어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하는 부모 밑에서 공부 잘하는 자녀는 이론상으로나 확률적으로나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내가 아는 한 정말 공부 잘한 학생들 중에서 공부만 한 학생은 없었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우선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만 시키는 것 보다는 다른 일을 하면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춘천 지역에서도 자녀가 되려 부모님께 신앙적 자극까지 드릴 정도로 ] 교회도 열심히 다니면서 아주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인 좋은 본보기가 여럿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아이들이 성공이 어느 한 측면으로의 조명만으로 설명될 단순한 일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개인적 성공 비결로도 연결됨은 곱씹을만한 진리일 것이다. 미국의 일류대학들이 입시에 봉사활동 내용을 크게 반영하는 것이 같은 연유인데, 우리들은 그 취지를 이해하기 보다는 봉사점수에만 관심이 많은 유감스러운 현실 속에 살고 있다. 나는 봉사가 기왕이면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본래, 교회 공동체는 봉사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는 봉사 자체만이 강조되지 말고 봉사와 교육이 효과적으로 연계된 봉사 프로그램에 의한 유인책이 있어야 하며, 교회는 우리 아이들이 봉사하면서 크게 배울 수 있는 제도의 마련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비록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한 차이이지만 교회 안에서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고 그 후배가 다시 후배를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의 도입도 고려했으면 싶다. 이는 개신교회에서는 이미 정착된 방법으로 우리 가톨릭이 배워야할 부분일 것 같다. 사실 이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크며 아이들의 경쟁적 참여가 이어지는 즐거움도 뒤따를 것이다. 가르치면서 스스로 배워가는, 그래서 교육이 무엇인지, 배움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터득하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우리 성당의 미래는 물론 우리나라 전체의 미래가 밝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더 밝아질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10주년을 맞이한 우리 스무숲 공동체 모두의 파이팅을 기대해 본다.  
4 어느봄날 축제의 마당 - 고정인 바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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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 2013-03-04
어느봄날 축제의 마당 - 고정인 바울리나 - 2004년 4월 화창한 새봄을 맞이하여 춘천시에서 주관하는 닭갈비 축제에 성전 건립기금 목적으로 지인을 통하여 스무숲성당에서도 참가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총구역장과 여성 부회장인 제가 주측이 되어 신자 모두가 힘을 모으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떠한 일도 해낼수 있다는 신념으로 적극 추진하였다. 그 당시만 하여도 일하는 것은 겁을 내지 않았지만 경험도 없이 의욕만 가지고 과연 이익금을 얼마나 낼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 같았다. 가정에서 조금씩 해먹어 본적은 있지만 식당에서 많은 양의 닭갈비 양념과 그 많은 인원을 동원 하기에는 두렵기도 하고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기도로서 모든 것을 주님께 의지하며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였다. 우선 닭갈비 양념 전문가인 자매를 수소문 끝에 찾아갔다. 닭갈비집을 운영하다가 잠시 쉬는 자매님이었는데 냉담 교우였다. 성전을 짓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봉사 하겠다고 기꺼이 승낙해 주었다. 막상 축제가 열려 천막을 치고 영업을 시작하는데 교우들 모두가 초보자여서 후라이팬이 드러붙고 타기도 하여 철수세미로 닦도 칼로 긁어내는 작업이 힘들었지만 오직 아름다운 성전을 지으려는 한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어느날 성당 교육관 주방에서 장사할 재료를 준비 하는데 축제 현장에서 인원이 부족하다고 하여 자매님들을 다 보내놓고 나혼자 남아서 국수(사리)를 빨리 삶기 위하여 미련스럽게 두솥을 한꺼번에 삶았더니 면발이 굵어져 건져 내는데 자꾸 미끄러지고 뜨거워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애를 태웠던 순간들이 생생하다. 넷째날인가 늦은 저녁 마무리를 하고 귀가 할때는 새벽 2시였다. 그날따라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앞이 보이지 않아 아파트 부근에 억지로 주차하는 순간 뒤에서 진입하던 차량과 “쾅”하는 소리와 함께 접촉 사고가 났다. 술취한 젊은 여자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삿대질을 하며 입에 담지못할 욕설을 퍼붓는데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무자비한 욕을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날밤 억울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지새웠는데 왜 그렇게 지루한 밤이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한창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니까 내가 그럴듯하게 보였는지 어떤 손님이 사장님. 하고 불러서 웃으며 “예”하고 응답하였다. 축제 봉사를 하면서 사장님이라는 호칭도 처음 들어봤다. 밤늦은시간 장사를 마감하고 매상올린 돈을 하나 둘 셀때는 육체적인 피곤은 사라지고 뿌듯한 마음으로 또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주임신부님은 매상을 올리기 위하여 매일 저녁마다 신자들과 함께 지겹도록 닭갈비를 드셨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남편 요셉도 축제 기간동안 친구, 지인들과 함께 자리를 매워주워 분위기를 띄어 주었다. 여기 저기서 5인분만 더 줘요! 주문소리와 함께 “네” 곧 나갑니다. 나의 팔은 아프지만 손과 몸은 신이나서 더 빠르게 움직여 졌다. 많은 신자들도 가족들과 또 친지들과 함께 찾아주어 늘 북새통을 이뤘다. 성공적인 축제로 물김치가 동이나서 한밤중에 자매님들을 동원하여 준비를 하는데 누구하나 불평없이 그 많은양의 물김치를 벼락같이 담구었는데도 간도 잘 맞았고 맛도 좋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음식 솜씨가 있어서일까 생각해보면 하느님께서 스무숲 교우들의 참 예쁜모습을 어여삐 여기시어 함께 해주셨기에 훌륭한 맛을 낼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기도를 드린다. 주님 내일은 두배로 모래는 세배로 채워주소서. 아멘..  
3 성모회 이야기 - 이두지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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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5 2013-03-04
** 성모회 이야기 - 이두지 데레사 - 10년. 어린 초등학생이 어른이 되는 짧지않은 시간이지만 난 아직도 성모회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다. 왜 서두부터 ‘아직도’라는 단어를 쓰는지 교우여러분들이 잘 아고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거부할수 없는 하느님의 뜻으로 첫 번째 임기를 마치고 다시 맡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처음 스무숲성당이 설립되고나서 분가전 모본당이었던 효자동성당에서 마리아회 총무를 했던 경험만으로 성모회장에 덜컥 선임되었다. 막막하고 부담스러운 자리임에 분명했다. 아직 성전도 없는 신설본당인데다가 그당시 15년정도의 신앙생활동안 단체장은 한번도 맡은적이 없어서 비신자인 남편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도 나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소소한 걱정을 하고 있을수가 없었다. 모본당이었던 효자동본당 임알로이시오 신부님을 찾아 뵙고 당장 성모회를 이끌 예산이 전혀 없던터라 부탁드렸더니 선뜻 50만원을 내어주셨다. 그돈을 종자돈삼아 여러 가지 일을 시작했다. 지금 다시하라고하면 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무조건 기금마련해서 지하성당을 떠나 성당터에서 교육관이라도 지어 나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지하성당에서 추억이 많지만 크게 기억나는 두가지가 있다. 우선 지하성당을 쇼핑센터 지하절반을 세들어 성당과 사무실, 회합실등을 꾸민상태라서 성모회원들과 같이 일할 주방은 없었다. 우선 급한대로 우리집에 모여서 각종밑반찬을 만들어서 포장하고 성당교우들과 비신자들에게도 팔아서 기금마련을 했고 우리회원들이 직접만든 것 말고도 고등어,김,잼등을 받아서 팔기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다들 10년전이라 육체적으로는 지금보다 덜 힘들었는지 모르지만, 모두가 합심해서 하는 일들이 힘들어도 힘들지 않고 즐겁게 일했던 것 같다. 항상 그 시절에는 성모회일을 하기 바빠 비신자인 남편의 눈치를 약간은 보기도 했었다. 남편은 내 신앙생활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주고 한번도 싫은내색 한적 없지만 그냥 내자신이 괜스레 남편과 아이들의 눈치를 조금은 살폈던 것 같다. 본격적인 성전건립이 시작되면서 공사현장식당 즉 함바를 시작했다. 우선 기본적인 그릇들과 약간의 예산이 필요했는데 성전건립이 시작되면서 성당예산도 없었고 성모회도 성전건립예산으로 다 소진해서 막막했는데 항상 하느님은 천사를 보내주시는지 세레나자매님께서 선뜻 50만원을 내어 주셔서 그돈을 가지고 식당에 필요한 기본적인 준비를 시작하였다. 회원들이 조를 짜서 식당운영을 했는데 여러신자들이 도움을 주었다. 반찬을 하라며 직접 재료를 가지고오는 교우들도 있었고 모두들 협조적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데 성모회 총무일을 했던 사례지아자매님은 회장인 나보다 더 열성적으로 몸 아끼지 않고 식당일에 헌신적이어서 지금도 그분의 노고는 잊을수가 없다. 주임신부님을 필두로 교우들의 여러 협조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성전건립이 완공되었고 나도 그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아이도 좋은 직장에 입사하게 되었고, 성모회장 5년임기도 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남편에게 약간은 소홀했기에 회장임기 끝나면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는데, 임기를 한달도 채남기지 못하고 남편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갑자기 우리곁을 떠나고 말았다. 내 약속이 무색하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다시5년이 흐르고 주님은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다시금 이 자리에서 봉사하게 하신다. 무슨 깊은뜻이 있는지 미약한 나는 잘 모르지만, 잘 모르기에 주님뜻에 순명하며 살려고 한다. 짧지않은 10년이었지만, 나에게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 힘만으로 되는건 아무것도 없었으며 우리 교우들의 도움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많으시간 견디고 지낸 것 같다. 모든분들게 항상 감사를 드린다.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 감사합니다.  
2 스무숲성당 10주년에 즈음하여 - 이진용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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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2013-03-04
*스무숲성당 10주년에 즈음하여* - 이진용다니엘- 스무숲 성당 설립 첫 모임이 2002년 9월초 첫 사제관이던 석사동 주공아파트 18층에서 있었다. 첫 모임에는 5명이 모여 스무숲에 신자와 첫 부임 발령을 받은 신부님과의 첫 상견례 자리였으며 이 자리에서 신부님의 스무숲성당 설립에 대한 첫 설명이 있었다. 스무숲성당은 춘천교구에서 지금의 부지를 구입. 성당으로 설립을 추진한다. 지금의 부지 일부위에 개인이 개 사육을 위한 농장이 있었다. 신부님께서 퇴계농공 단지 내에 창고를 임대해 임시성당으로 사용하려 했는데 농공단지 내에는 종교시설이 들어 올수 없다 하여 무산 되었다며 지금의 부지위에 천막을 치고 임시 성당으로 시작을 해야 한다고 설명을 하신다. 모두가 힘들텐데 하며 말을 할 때 내가 이의를 제기 했다. 천막을 치는 것도 많은 비용이 들며 겨울에 추운데 난방비며 또 많은 신자가 자기가 다니고 있는 성당에서 잘 지내다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올 것이다. 추운겨울에 천막성당으로 오겠느냐고 이의를 제기하자 다른 한분은 어려움이 있으면 더 단합이 잘되지 않겠나 한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천막성당으로 오겠느냐고 하자 신부님께서 좋은방법이 있겠느냐고 하자 저마다 헌 조립식 자재로 지어 보자고 한다. 그것도 만만치 않는 돈이며 쉽지는 않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다시 의견을 제시하였다. 지금 우리집 앞 지하상가가 비어있다. 그것을 얻어서 활용해봄이 어떻겠는냐고.. 자세히는 모르니 시간의 여유가 있는 스테파노형제에게 알아보라고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서 의논을 하기로 하고 첫만남이 끝났다. 나는 바로 집 앞 상가에 가 보았다. 너무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많은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스테파노형제에게 전화를 해서 함께 보고 너무 좋은 장소다. 꼭 이루어 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다음날 스테파노 형제가 전화를 했는데 문제가 많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 상가를 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기다렸다. 몇일이 지나서 신부님과 나 스테파노 셋이 만나서 상가를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가가 지금 경매에 넘어가 있으며 채무자가 건물을 맡고 있다고. 우리는 그럼 전세는 안되고 월세로 있기로 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신부님께서는 나에게 신자들을 모아서 성당작업을 해달라고 하신다. 바로 작업에 들어가 보니 의외로 힘이 든다. 건물 위층에 독서실이 있었는데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왔다. 그래서 낮에만 하고 저녁7시후에는 소리 안나는 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다음날부터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애막골성당에 교우목수를 불러서 성당으로 만드는데 협조를 구했다. 그 교우도 낮에는 일터로 가고 우리에게 할 일을 지시 해놓고 갔다가 와서 밤이면 함께 일을 했다. 주변의 자매님들이 모여와서 식사를 해오겠다고 하고 여럿이 모여서 먹거리를 해오셨다. 참으로 옛말이 있듯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니 참으로 힘이 들었다. 말 그대로 돈만 많이 쓰면 그래도 수월할터인데 적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하기가 참으로 힘이 들었다. 그래도 많은 인맥에 교우들이 함께하고 도와 주시니 서서히 성당으로 갖추어 갔다. 전기 시설은 우리 성가대에 있는 강희광 시몬형제가, 오디오시설은 초대 사목회장님이 시공해주셨다. 효자동에 함께 했던 교우가 인테리어 및 페인트, 도배, 커텐은 원가로 해주기로 하셨는데 나중에는 모두 봉헌하신다고 하셨다.. 공사를 하며 나온 쓰레기는 친구 형제가 모두 치워 주셨다. 우리가 앉아야할 의자는 교우분이 봉헌을 해주셨고 회합때 사용하는 책상은 효자동성당에서 새것을 얻어오고 제대며 고상은 신부님께서 다른성당에서 얻어 오시고 성당 사무실이며 신부님 집무실에 쓰는 집기는 건물에서 전에 사용하던 것을. 해설대와 독서대는 시내 재활용센터를 뒤져 겨우 한군데에서 싸게 구입을 하니 어엿한 성당으로 모습을 갖추었다. 신부님께서 첫미사를 목요일부터 시작하시자고 하여 첫미사가 봉헌되었다. 그러면서 그 주부터 스무숲성당의 주보가 발행되었다. 참으로 하느님 사업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모두 이루어 주셨다는 것.. 신부님께서 부르시더니 이제 본당으로 갖추었으니 신자들이 많이 오게 하고 각 단체를 결성하고 간부를 임명하자고 하신다. 신부님이 모든 것 알아서 하실 것을 말씀드리고 하나하나 조언만 해드렸다. 각 단체며 레지오, 사목회가 모두 갖추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현 부지에서 주교님과 교구에 신부님들 다른본당 신자들이 참여 하는 스무숲 성당 설립미사가 이곳에서 봉헌되었다. 착실하게 기초를 다져간 스무숲성당을 먼저 교육관을 짓고 다음에 본당을 설립 명실 상부한 춘천교구에 으뜸가는 본당으로 자리잡고.. 이제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음에 감회가 새롭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하고 뿌뜻하다. 성당 천장 상량목에 새겨진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항상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며 성당에 앉으면 하늘을 보듯 쳐다 보게 된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스무숲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가꾸어 나가고 함께 어울리면서 모두가 하나이듯 모든단체가 스무숲공동체로 하느님의 성전을 가꾸어 나갑시다.!  
1 1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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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 2013-03-04
지난 1년동안 10년의 이야기를 담으려 "편찬"의 이름으로 "편찬분과"가 신설되었습니다. 1년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10년사를 담은 "기념집"을 편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에피소드등을 넣은 읽기쉬운 기념집을 만들고자 하였고 부록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넣으려 했습니다. 기념집이 완성되어 가는동안 에피소드나 우리들의 이야기로 접수된 이야기가 겹쳐지는 부분이 있고 참여해주신 분이 많지 않아 기념집에서 빠지고 대신 이렇게 홈페이지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께 정말 죄송한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참여해주신 분외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분은 이곳에서 만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온고이지신 이라는 옛 성현의 말씀처럼 옛것을 잊지않고 돌아보며 새것을 더욱 다시지기위한 아름다운 만남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러면 먼저 제출해주신 분 원고부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